포항 중앙상가에 위치한 신나라레코드 가게.

턴테이블을 샀다. 오래전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분리수거 해 버렸는데 쇼핑몰에서 아담한 녀석을 보자마자 한눈에 반해버렸다. 굵직하고 낮은 목소리의 올드 팝에 이끌려 가보니 LP판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가끔씩 지직거리는 소리가 정겨워 한참을 멈춰 서서 들었다. 쇼핑목록에 없었지만 사지 않으면 눈에 밟힐 거 같아 업어와야만 했다.

이 녀석은 자세히 보니, 최첨단 기능을 탑재하고 있었다. LP판을 돌리는 건 기본이고, CD를 넣는 곳도 있었고 USB도 꽂는 데가 따로 있고, 라디오 채널을 잡는 다이얼이 있어서 소리를 높일 때 사용하기도 했다. 블루투스 기능도 있어서 스마트폰에 저장된 노래도 받아 전해준다. 더 깜찍한 것은 지금은 거의 모든 기기에서 사라진 마그네틱테이프를 재생하는 기능이었다. 턴테이블이 아니라 어벤져스였다.

친구 정덕이가 집안 정리한다며 오래된 LP판을 수십 장 가져와서 쓸데 있으면 쓰라고 해서 보관한 것이 산울림, 신승훈, 김현식…. 열 개 정도 된다. 소리로 재생할 기계가 집에 없는데 뭐 하러 들고 왔냐는 남편의 타박에 추억의 책갈피처럼 사용하면 되겠지 했는데 이렇게 턴테이블이 다시 생길지 나도 몰랐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집에 나팔 모양을 단 축음기가 있어서 제삿날에 친척들이 모이면 LP음반을 올려 들려주셨다고 한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니 캐나다에 선교사로 나가 오래 사신 용출삼촌이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관한 기억이라고 문자로 보내왔다. 그때 할아버지는 누구의 노래를 들려주셨을까? 기계 하나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기억까지 소환했다.

새로 들인 어벤져스를 이용해 보리라. 레코드가게에 가보기로 하고 검색을 했더니 포항에 ‘신나라레코드’란 가게가 있었다. (구)해변레코드란다. 학창시절에 자주 드나들던 곳이라 무지 반가웠다. 좋아하던 가수의 신곡이 발매되자마자 가서 테이프를 샀던 곳이다. 이문세의 4집, 5집을 하도 들어서 테이프가 늘어 났었더랬다. 라디오에 좋아하는 노래가 샘물처럼 흐르면 공테이프에다 퍼 담듯 모았었다. 특히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 쇼’와 ‘별이 빛나는 밤에’가 자주 찾던 옹달샘들이다.

시내 가장 번화가 중앙로 292-1번지에 자리 잡은 레코드가게, 매장이 제법 넓었다. 테이프는 그리 많지 않았다. 몇 개 골라서 물어보면 판매하지 않는다는 게 더 많았다. 연도가 가장 오래된 것을 보니 1977년에 대도레코드사에서 만든 판소리춘향가였다. 인간문화재 박초월 외 여러 분의 사진이 뒤표지에 있고 앞표지는 신성일과 이름을 모르겠는 여배우가 출연한 춘향전의 한 장면이 그려진 포스터였다. 남편 말이 저 사진에 나온 사람들 대부분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거라고 한다.

오늘의 국가기념일 음악 테이프도 사왔더니 이건 뭐에 쓰려고 샀냐고 웃었다. 개천절노래 반주,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음악 같은 제목이 길가다 멈춰 서서 국기 강하식을 하던 그때를 떠올리게 해서 샀다. 테이프는 이제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장님의 말이 가진 거라도 잘 간직하세요라는 말로 들려 더욱 사게 됐다.

LP판이 벽면 가득했지만 비매품이었다. 또 다른 코너에는 CD가 가득했다. 최근에 나온 아이돌 가수의 앨범은 책 같기도 하고 디자인이 다양해서 팬도 아닌데 소장하고 싶을 정도였다. 아들은 레드벨벳의 한정판 앨범을 구입했는데 브로마이드가 사은품으로 딸려왔다.

여고시절 드나들던 가게에서 아들과 같이 한나절 놀았다. 내가 좋아했던 노래와 가수 이야기를 해주며 아들이 군대에서 선임이 하도 즐겨 들어서 자기도 좋아하게 된 여자 아이돌 그룹 음악도 나누었다. 노포가 많이 남아있어야 하는 이유였다.

계산대에 고르고 고른 테이프와 CD를 올려놓고 기다리며 보니 두 손이 세월의 먼지가 묻어 새까맣다. 몇 년 전의 먼지일지 그것조차 정겨웠다. 거기 있어줘서 감사해요, 오래 버텨주세요. 사장님께 부탁의 말을 남기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