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작품들이 많았던 유아인
‘#살아있다’서 평범한 청년 변신

‘#살아있다’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살아있다’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유아인은 수많은 청춘을 연기해 왔다. 그 정점에는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받고, 뉴욕타임스 선정 ‘올해 최고의 배우’라는 수식어를 안겨 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의 종수가 있다.

개봉을 앞둔 ‘#살아있다’의 준우는 종수와는 다른 의미로 이 시대 청춘의 표상이라 할 만하다. 그가 연기해 온 청년 중에 ‘컴퓨터 앞에 앉아 마음 편히 게임을 하는 정도’의 지극히 평범한 요즘 애들이나 옆집 청년 같은 캐릭터는 지금껏 없었다.

개봉을 앞두고 만난 유아인은 “실제 생활보다 너무 무겁고 진지한 작품을 많이 해 왔다. 내 세대가 가진 발랄하고 감각적인 모습들 대신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젊은 세대를 그려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선택한 준우 역에 대해 유아인은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어쩌면 현실에 더 가까울지 모르는 면들을 풀어내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겠다 싶었다”고 설명했다.

“‘버닝’의 종수가 이창동 감독님이 생각하는 이 시대의 젊은이에 대한 함축적인 언어라면, 준우는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스마트폰 쓰고, 욕도 하고. 정말 옆집에 사는 청년 같은 평범함을 가진 친구죠.”

영화 ‘#살아있다’는 엄연히 장르물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등장한 좀비 떼가 한국의 주거 공간을 대표하는 아파트를 습격하고, 혼자 집에 남아있던 준우는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인다.

하지만 좀비 떼는 홀로 남겨진 한 인간의 감정을 깊이 따라 들어가기 위한 수단처럼 쓰였다.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 좀비 떼를 만나 홀로 갇힌다는 지극히 평범하지 않은 상황을 맞닥뜨리고, 그 상황이 아니었다면 겪지 못했을 극한의 감정에 도달하는 진폭을 이질감 없이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게 유아인에겐 이번 작품의 숙제였다.

좀비 떼 탓에 고립된 상황은 바이러스에 고립된 현 상황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만든 설정이지만, 모두가 자가격리와 거리 두기를 경험하고 있는 시기에 예상을 뛰어넘는 공감대를 얻을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유아인도 “지금이 아니라면 (영화에서 얻는) 그 느낌이 지금처럼 강하지 않았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연기력을 의심받지 않는 몇 안 되는 젊은 배우지만, 작품이나 연기와 상관없는 논란의 중심에 서곤 했던 그였다. 준우처럼 헐렁한 청바지에 흰색 면 티셔츠를 입고나온 그에게서 예전의 날 선 예민함은 조금 흐릿해진 듯했다.

연예인들의 혼자 사는 일상을 보여주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출연분이 예고편을 타면서 관심이 높아졌다.

그는 “시작과 끝이 있는 촬영만 하다가 쭉 나를 관찰하는 카메라 앞에 서고 그걸 다시 보는 게 색달랐다. 나도 몰랐던 나의 태도와 습관을 발견했다”며 “재미 없고 답답한 시기를 지나 과도기를 거쳐 오니 내가 좀 편해졌고, 그걸 다른 분들도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도’가 어떤 시기의 매듭으로 느껴지기는 해요. 그런데 그 역시 지나고 나니 전체 퍼즐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더라고요. 어느 순간 지나고 보면 내 생각이 근시안적인 판단이었고,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용감하게 도전할 수도 있었던 것 같아요.”

‘버닝’은 그가 말한 과도기의 어디쯤 자리했다.

“내가 김연아도 아닌데 어느 순간 다 성취하고 목표를 상실한 느낌이 들었어요. 친구처럼 지내는 형, 누나들과의 대화도 힘들어지고. 그런 걸 추구하면서 살아야 하나? 삶의 동력을 잃은 것 같았어요. 지나고 나니 또 자연스럽고 당연한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삶의 동력 자체에 대한 개념이 바뀐 것 같고, 여전히 과도기를 지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다양한 감각을 통해 매 순간에 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