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뚝뚝한 요리 멘토 ‘치코’와
소년 ‘에이브’의 동화같은 성장담
영화 ‘에이브의 쿠킹다이어리’

영화 ‘에이브의 쿠킹 다이어리’. /진진 제공
아이의 성장담은 늘 따뜻하다. 아이는 주변 어른과 세상을 함께 바꾼다. 당분간은 갈 수 없는 아름다운 도시 뉴욕 브루클린이 배경으로 펼쳐지고, 활기찬 부엌의 신선한 식재료들이 색의 향연을 펼치니, 힘겨운 일상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종합선물세트가 됐다.

영화 ‘에이브의 쿠킹 다이어리’는 선댄스영화제의 ‘선댄스 키즈’ 섹션에서 선보인 성장 영화다. 요리를 좋아하는 열두살 소년 에이브의 이야기는 요리 사진을 올리는 SNS의 실시간 반응이나 레시피와 맛집을 검색하는 구글 화면을 오가며 경쾌한 리듬으로 펼쳐진다. 밝고 행복하기만 할 것 같은 이야기는 행복한 상상으로 짧게 끝나고, 세상에서 가장 첨예하고 민감한 갈등의 한가운데인 식탁으로 돌아온다.

‘멜팅폿’ 뉴욕에서도 팔레스타인계 무슬림인 친가와 이스라엘계 유대인인 외가를 둔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에이브는 생일에도, 추수감사절에도 열심히 준비한 맛있는 음식을 마음 편히 즐기지 못한다.

가족을 사랑하는 에이브는 유대교 성년식인 ‘바르 미츠바’에 참석해 라마단 금식을 수행할 정도로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부모님과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늘 종교와 민족, 문화와 역사를 두고 싸움을 벌인다.

에이브는 꼬마들이 소꿉장난하는 요리 수업을 몰래 빠져나와 팝업 스토어를 여는 푸드트럭 셰프 치코를 찾아간다. 에이브는 당장 하고 싶은 요리 대신, 설거지와 쓰레기 버리기라는 기본부터 시작해 ‘퓨전은 곧 조화’이고 ‘맛을 섞으면 사람들도 뭉친다’는 신념을 배운다.

치코는 아프리카에 뿌리를 둔 브라질의 간식 아카라제를 만들고, 에이브는 팔라펠이나 샤와르마 같은 중동의 음식들을 공부한다. 결전의 날, 에이브는 ‘화해에 어울리는 음악’을 틀어놓고 치코의 조언대로 맛 지도를 그려나간다.

에이브의 이야기는 페르난도 그로스테인 안드레이드 감독의 경험에서 나왔다.

그는 1930년대 유럽을 탈출한 유대인의 손자이자 브라질에서 온 가톨릭 이민자이고, 엄마의 재혼으로 핀란드계, 이탈리아계 누나가 있다.

다큐멘터리를 주로 만들어 온 감독은 다문화 가정에서 자라며 정체성을 고민해 온 자신의 경험으로 첫 극영화를 만들었다.

넷플릭스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의 소년 윌 바이어스 역으로 미국배우조합상 연기상을 받은 노아 슈나프가 에이브를 연기했다. 싸움만 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난감해하면 같이 안타까워지고, 주방에서 처음 인정받고 돌아가며 미소 짓는 얼굴을 보면 같이 미소 지을 수밖에 없다.

무뚝뚝하지만 속정 깊은 멘토 치코를 연기한 사람은 브라질 출신 싱어송라이터이자 배우인 세우 조르지다. 데이비드 보위의 곡을 커버한 그의 노래를 좋아했던 팬이라면, 훨씬 커진 몸집에 바로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더라도 주방에서 일하며 흥얼거리는 짧은 노래만으로도 그 목소리가 반가울 만하다. 6월 24일 개봉. 전체관람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