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등교 개학 2주가 지났다. 학교 구성원 모두가 코로나19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계속되는 지역 감염 소식에 긴장은 오히려 더하다. 등교 후 매시간이 열(熱)과의 전쟁이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밤을 잊고 연구를 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아직 인류와 타협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민간 우주여행 시대가 열렸다고 인류는 야단법석이지만, 바이러스로부터 인류를 보호할 수 있는 것은 아직 마스크뿐이다. 그래서 교사들은 마스크에 유독 민감하다. 다른 건 몰라도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은 학생에겐 어느 때보다 지도의 소리가 높다.

예방이라는 최고의 백신 역할을 하는 마스크지만, 온종일 마스크 안에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학생들의 답답함도 답답함이지만, 마스크를 쓴 채 수업을 해야 하는 교사들에게 마스크는 벽이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 벽을 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소리를 평소보다 훨씬 높여야 한다. 그러다 보면 목에 무리가 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최근 코로나와 별개로 인후통을 호소하는 교사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선생님의 수업에 대한 열정은 교실을 넘어 복도를 점령했다. 그래서 등교 개학 이후 복도는 쉴 시간을 잃었다. 복도에는 쉬는 시간에는 학생의, 수업 시간에는 교사의 소리로 가득하다.

그 복도에 갑자기 학생의 외마디 외침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아파요!”

처음에는 겨우 들릴 정도였으나 점차 소리는 세상 모든 소리도 삼킬 정도로 커졌다.

“선생님, 진짜 아파요. 아아!” 비명은 절규로 바뀌었다. “그래 소리 질러.” 비명 섞인 학생의 절규는 계속되었다. 교사는 멈추기는커녕 학생을 더 독려했다. 그냥 소리만 들으면, 누구라도 폭력 장면을 생각할 것이다.

“그래 소리 질러. 아프면 소리 지르는 거야. 참지 말고 아프면 아프다고 해!”

이 소리는 필자의 소리다. 수업을 마치고 교실 문단속을 하기 위해 학교를 둘러보다가 필자는 교실에 혼자 있는 학생을 발견했다. 학생의 표정은 어두웠고 몸은 경직되어 있었다. 경직된 몸을 좀 풀어줄 겸 해서 어깨 마사지를 해주었다. 학생은 손이 닿기도 전에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소리는 내지 않았다. 소리 대신 표정으로 아픔을 말할 뿐이었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극도로 절제된 소리로 아프다고 말했다. 그 소리에 자신도 놀랐다. 놀람 속에서도 학생은 뭔가 희망을 찾은 표정이었다. 늘 뭔가에 주눅 든 모습의 학생은 지난 학교에서 학교로부터, 교사로부터, 친구들로부터 입을 다물라는 강요부터 배웠다.

“이 아픔을 가슴에 안고 어떻게 살았니. 이제부터는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 질러!”

“선생님, 진짜 그래도 돼요?” 학생은 소리를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어깨를 누를 때마다 소리를 질렀다. 학생의 얼굴이 점점 환해졌다. 줄세우기식 시험이 학생들을 옥죄는 6월, 우리 주변에는 아파도 아프다고 말을 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다. 시험 점수 올리는 요령보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6월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