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마당이 딸린 집에서 살려면 적잖은 노고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6년 넘도록 촌에서 살다 보니 생각지 못한 수고가 곳곳에 필요하다. 처음에는 농촌생활이 즐겁고 행복했다. 층간소음도 없고, 콘크리트와 자동차 경적(警笛)과 온갖 소음에서 벗어난 만족감이 깊이 밀려오곤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흘러가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여 퇴색하고 시들어지기 마련 아닌가.

작년에는 전남대 교환교수로 지내다 보니 집안일에 더욱 소홀하고 말았다. 그러던 차에 코로나19가 ‘집콕’을 유도했기로, 기회다 싶어 육체노동을 아끼지 않았다. 오래도록 방치된 유리창을 정성스레 닦고, 현관 데크에는 오일 스테인을, 계단과 가구에는 니스를 칠했다. 뒷마당의 대나무 뿌리 제거작업을 신호탄으로 좁지 않은 대지의 식물 전체를 손보기로 한다.

땅속에서 종횡으로 뿌리내리는 대나무를 대적하는 작업은 상상 이상이다. 호미와 전지가위, 삽과 톱을 동반한 작업이 1주일 넘도록 진행됐다. 뿌리의 완강한 저항을 뚫고, 곳곳에 박혀 있는 돌을 캐내면서 구슬땀으로 범벅된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잘 골라진 터에 왜성 체리 세 그루를 심고, 금계국과 안개꽃, 코스모스와 데이지, 구절초와 루드베키아 씨를 뿌린다.

그뿐이겠는가! 체리 세이지와 정향초, 사계절 패랭이와 겹물망초를 사다가 심어준다. 장소를 안마당으로 옮기니 일이 더 많다. 30여 종에 이르는 나무를 전지(剪枝)하고, 대나무와 쑥의 뿌리를 캐내고, 사초를 한곳으로 몬다. 오래전부터 대나무에 꽂혀 있었기로 화분의 사초를 마당에 옮겼더니 제 세상 만난 듯 창궐(猖獗)했다. 그것들을 마당 한구석으로 몰아놓고 그 위에는 흑백의 자갈로 덮는 중노동을 감행한다.

그러다 어느 날 오른손 세 번째 손가락이 90도로 접히면서 펴지지 않는다.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 손가락. ‘햐, 뭐 이런 일이 있나?!’ 정형외과 의사는 그것을 ‘방아쇠 수지 증후군(Finger Trigger)’이라 했다. 방아쇠를 당길 때 의식적으로 손가락을 당기고 펴줘야 하는 것 같은 증상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약물요법과 수술요법 두 가지 치료법이 있다는 설명도 친절하게 덧댄다. 주사기로 약물을 투입하고, 사흘 분량의 약을 먹었지만, 증상은 호전되지 않는다. 옆집 사람들에게 사정을 말하니, 남매가 유경험자였다. 한 사람은 수술했고, 다른 사람은 증상을 버려두었다고 한다. “사는 데 지장 없어예!” 남의 일처럼 말하는 품새에서 안도감 같은 게 느껴진다. 통계에 따르면, 1년에 1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방아쇠 수지 증후군을 경험한다고 한다.

나도 그냥 견디기로 한다. 오랜 세월 백면서생(白面書生)으로 살아온 인간이 불과 두어 달 일했기로 겪는 고초가 그리 만만찮다. 하되 육체노동이 주는 쾌감과 성취감은 크다. 집이 모양새가 나고 틀을 갖춰나가는 것을 보면 흥이 절로 난다. 손가락에서는 아직도 소리가 나고 불편하지만, 특별한 경험으로 날로 풍성해지는 초여름날이 깊어지는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