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기자가 만난 경북 사람
‘인터넷시대’의 유쾌한 한문학자 김재욱

심력이 허락하는 한 글을 쓰고 싶다는 김재욱 씨.
심력이 허락하는 한 글을 쓰고 싶다는 김재욱 씨.

‘한문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하면 길게 기른 수염에 하얀색 모시 한복을 제대로 갖춰 입은 노인이 떠오른다. 더불어 ‘서당’과 ‘훈장’이란 단어가 눈앞으로 스쳐 지나간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어쩔 수 없는 선입견이다.

그런데 ‘조금’ 다르다. 아니 ‘많이’ 다르다. 고려대 한문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김재욱(49) 강사는 글에서 보이는 감각과 말에서 느껴지는 센스가 재기발랄한 20대 청년 같다. 에너지가 넘치고 자유분방하며, 심지어 모던하다. 그에겐 대중의 선입견을 전복시키는 힘이 있다.

바로 그 자유로운 에너지와 모던한 힘으로 김재욱 씨는 현재까지 적지 않은 책을 썼고, 페이스북과 팟캐스트 등을 통해 인터넷 세상을 종횡무진 중이다. 물론 본업이라 할 강의에도 소홀하지 않는다.

몇 해 전엔 중국 고전 ‘삼국지’ 속 등장인물과 21세기 한국의 정치인·언론인·작가 등을 매치해 분석한 글을 페이스북에 연재해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는 ‘삼국지 인물전’ 출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거침없는 태도와 명쾌한 논리, 여기에 위트가 담긴 김재욱 씨의 글과 말은 적지 않은 독자와 네티즌을 매료시킨다.

하지만 정작 스스로는 겸양하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낮출 줄 안다. 인터뷰 내내 이것이 ‘통념을 깨는 한문학자’ 김재욱의 매력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아래는 그가 들려준 삶과 일, 기억과 꿈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파란 하늘빛으로 추억되는 영주서 12살에 상경
어릴 적 ‘천자문’·‘명심보감’으로 접한 한문학의 세계
대학 전공으로 선택했지만 본격 공부는 25세부터
대학 강단에 서며 한시·인문서 등 10편의 책 펴내
‘삼국지’ 인물과 정치인·언론인 등 매칭한 인물평
페이스북서 뜨거운 반응 ‘삼국지 인물전’ 출간으로
팟캐스트 활동도 시작하며 인터넷 세상서 종횡무진
명쾌한 논리로 ‘통념을 깨는 한문학자’로 매력발산

-고향과 현재 하는 일은.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열두 살 때 서울로 이사했다. 부모님 고향은 봉화다.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강사고, 강의가 없을 땐 글을 쓰고, 인문학 강연을 다니고 있다.

-어릴 때부터 한문에 관심이 있었던 건가.

△네 살 때 할아버지께 ‘천자문’을 배운 기억이 있다. 아버지도 ‘명심보감’을 가르쳤다. 그러나 한문에 별 관심이 없었고, 한문학과 진학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대입 시험 점수를 맞추다보니 한문학과를 선택하게 됐다.(웃음)

-유년과 청년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는지.

△중고교 시절은 있는 듯 없는 듯 평범한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땐 성적이 바닥이었고,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 다만 글을 잘 쓰고 싶어 문예부에서 열심히 활동했다. 대학에선 노래 동아리를 만들었다. 학생자치기구와 학생회에서 일하기도 했다. 성격이 내성적이라 좀 바꿔보고 싶었다. 그런데 성격은 잘 안 바뀌더라.

-당신이 생각하는 한문과 고전의 매력은 뭔지.

△본격적으로 한문 공부를 시작한 건 스물다섯 살 때다. 한문학과를 나왔으니 최소한 ‘논어’ ‘맹자’는 알아야하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개설한 ‘논어’와 ‘맹자’ 강의를 들었다. 그런데 그게 재미가 있었다. 그때 불이 붙어 이쪽으로 진로를 잡게 됐다. ‘한문’을 고리타분하고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측면에선 현대의 글과 비교해도 센스 면에서 더 나은 글도 많다. 한문 고전 안에서 삶의 지혜나 교훈을 찾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재미있고 감동을 주는 글이 넘쳐난다.

-‘삼국지’ 등장인물과 현대 정치인을 비교·분석하는 글로 SNS에서 주목받았는데.

△2013년 말 논문 두 편의 마감 시한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어느 날 밤 이 스트레스를 풀려고 페이스북에 삼국지 인물과 현대 인물을 매칭해 짧은 인물평을 썼다. 그런데 다음날 깨보니 페이스북이 난리가 났다. 친구 신청이 쇄도하고, 계속 연재해 달라는 댓글이 올라오고…. 그런 이유로 논문을 서둘러 마무리 한 후 ‘삼국지인물전’의 초고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페이스북과 팟캐스트 등을 통해 대중 소통을 잘 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이 내 글이나 방송을 좋게 봐준 것이다. 페이스북, 팟캐스트의 공통점 중 하나는 ‘마음에 맞는 사람’을 골라서 만날 수 있다는 거라고 본다. 이는 이전 시대의 매체와 구별이 되는 것이고, 매력과 한계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자기 맘대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면서 한계가 아닐까? 내 경우는 일방적으로 내 할 말만 하지만, 모자란 소통은 오프라인을 통해 메우고 있다.

 

김재욱 씨는 팟캐스트 등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걸 즐긴다.
김재욱 씨는 팟캐스트 등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걸 즐긴다.

-여러 권의 책을 출간했다. 가장 애착이 가는 건 어떤 건가.

△올해 출간 예정인 것까지 합하면 모두 10권이다. 학술서, 인문교양서, 소설 등인데, 2015년 나온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가 애착이 간다. 내 전공이 ‘한국 한시’다. 독자에게 한시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어 좋았고, 한시를 통해 인생, 사회, 역사, 철학과 같은 인문학 영역에 속하는 거의 모든 걸 말할 수 있어서 좋았다. 책에선 사람의 삶과 세상의 일은 단순히 칼로 무 베듯 자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한자와 한문 공부 노하우를 알려준다면.

△먼저 ‘한자’와 ‘한문’을 구별해야 할 것 같다. 한자는 말 그대로 ‘낱글자’고, 한국어의 단어에 들어가는 것이다. ‘한문’은 한자로 이루어진 문장을 뜻한다. 공부의 특별한 노하우는 없다. 한자는 많이 보고 쓰고 입으로 말하면서 외우는 게 가장 좋은 공부 방법이다. 조금씩 공부하더라도 꾸준히 하는 게 좋다. 마음먹고 잘 하고 싶다면 하루에 10분이라도 투자해서 읽고 쓰면 의외로 얻는 게 많을 것이다. ‘한문’도 비슷한데, 다만 익히는 데 매우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모든 공부가 그렇겠지만 속성으로 익히기는 어렵다.

-유년을 보낸 경북에서 잊을 수 없는 기억은.

△영주남부초등학교 운동장의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 파란 하늘, 밝은 햇볕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 속에 친구들과 걸어가는 내 뒷모습이 있다. 정말 밝기 그지없는데 마음 한 구석엔 슬픈 마음이 일어나고, 조금씩 눈물도 나고 그렇다. 어릴 때 서울로 이사를 왔고, 이후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조금은 어두운 유년시절을 보내서 그런 것 같다. 영주에서 봉화로 넘어가는 영동선 철길에 핀 코스모스도 떠오른다. 고향에 가도 늘 고향이 그립다.

-학생들에겐 어떤 스승이 되고 싶은가.

△‘스승’은 지식 뿐 아니라 지혜를 전달해 학생들이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난 스승이 될 자질은 부족하다. 학생들에게 스승이 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저 내가 맡고 있는 과목을 학생들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강사’가 되려고 한다. 강의 준비 잘 하고, 강의실에서 먼저 학생들에게 반갑게 인사하는.(웃음)

-학자로서, 인간으로서 당신이 가지고 있는 미래의 꿈은.

△‘백세 시대’라고 하지만, 그만큼 살기는 어렵다고 본다면 적어도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냈다. 살아온 날이 더 많아졌다. 학자로서든 인간으로서든 개인적인 미래를 생각할 나이는 아닌 것 같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꿈이나 목표를 두고 살지는 않았다. 그때그때 길이 주어지면 그 길을 따라서 살아왔다. 물론 그 길을 갈지 말지 선택은 내가 했지만, 인생을 계획적으로 살진 못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꿈은 없다. 꿈이 있다고 해서 그 삶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는다. 다만 심력이 허락하는 날까지 글을 쓰고 싶다. 쓸 말이나 쓰는 데 필요한 지식이 바닥나면 그만둘 각오도 돼 있다. 무언가를 억지로 이루려고 노력하면서 살고 싶지 않은 게 꿈이라면 꿈이다.
 

‘한자’와 ‘한문’을 구별해야 할 것 같다. ‘한자’는 말 그대로 ‘낱글자’고, 한국어의 단어에 들어가는 것이다. ‘한문’은 한자로 이루어진 문장을 뜻한다.

공부의 특별한 노하우는 없지만 한자는 많이 보고 쓰고 입으로 말하면서 외우는 게 가장 좋은 공부 방법이다. 조금씩 공부하더라도 꾸준히 하는 게 좋다.

마음먹고 잘 하고 싶다면 하루에 10분이라도 투자해서 읽고 쓰면 의외로 얻는 게 많다. 모든 공부가 그렇듯 속성으로 익히기는 어렵지 않나.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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