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내실 튼튼한 유럽 중심국가 독일을 떠나…

◇ 페리 예약에 실패하다

함부르크에 도착하자마자 말뫼로 넘어가는 페리를 예약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페리 예약 사이트에서 카드 결제를 하려니 국내 휴대폰 인증을 받아야 한다. 로밍 신청을 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인증을 받을 수가 없다. 항구까지 가서 해결하는 수밖에.

북유럽에서 다시 러시아로 들어가려면 두어 번 페리를 이용해야 하는데 예약할 수가 없으니 한참 기다리거나 아예 타지 못할 상황도 염두에 둬야한다.

아주 작은 문제가 가끔 이렇게 다음 여정의 발목을 잡을 때가 있다. 함부르크에서 2박 3일, 이제 나머지 일정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 만약 페리를 이용할 수 없다면 스톡홀름에서 오울루를 거쳐 헬싱키로 가야할 수도 있다.

그렇게 육로로 돌아간다면 2000킬로미터, 최소 4일은 더 잡아야 한다. 함부르크 숙소는 겉은 너저분한데 안은 깔끔 그 자체다. 주차도 무료로 할 수 있고 부엌도 있고 큰 마트도 바로 옆 건물이라 편리하다. 거기다 4인실 방을 혼자 쓴다. 암스테르담과 비교하면 여긴 5성급 호텔이었다.

오전에 빨래하고 계란 삶고(간식 겸 비상식량) 바느질하고… 오후 늦게 시내 구경이나 할까 나갔다가 휴대폰을 챙겨가지 않아서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휴대폰을 숙소 부엌 식탁 위에 올려놓은 줄도 모르고 잃어버렸나 망연자실했었다.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다시 나가려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 삶은 계란 까먹고 그냥 가만히 눈감고 있었다. 눈이 쉬이 시린 증상은 오래 되었는데 햇빛을 보고 달리니 더욱 심해졌다. 선글라스를 껴도 시린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쉴 때 눈을 감고 있는 게 최선이다. 독일의 생필품 물가가 싸다는 이야긴 들었지만 어제 오늘 숙소 옆 알디 마트에서 우유, 계란, 샴푸, 식빵 등을 샀는데 확실히 한국보다 훨씬 저렴한 듯하다. 우유 1리터 0.73유로, 샴푸 0.65유로, 계란 6개 1.25유로, 식빵 0.95유로. 우리보다 훨씬 소득 수준이 높은데도 식료품이나 생필품 물가가 저렴한 이유가 뭘까. 정부가 생필품에 대해서 보조를 하거나 가격 상한선을 정해둔 걸까. 알디 마트가 가격 경쟁력으로 유명하다지만 이 정도면 놀랍다.

잠시 동네를 둘러본 것이 다지만 밖은 꾸미지 않으나 안은 꽉 차 있는 느낌이랄까.

지금 묵고 있는 숙소도 그렇고. 내실이 튼튼하기 때문에 유럽의 중심 국가가 될 수 있었겠지. 어쨌거나 장을 보면서 독일에선 적게 벌고 가난해도 굶어죽지는 않겠구나, 생각했다. 이건 정말 중요한 문제다. 비가 내리다말다 하더니 날이 어두워지니 빗방울이 더 굵어진다. 출발하는 내일 아침에는 그쳐야 할 텐데.
 

오슬로에 도착해 북유럽 투어 중인 프랑스 라이더 크리스티앙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슬로에 도착해 북유럽 투어 중인 프랑스 라이더 크리스티앙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 드디어 북유럽으로… 스웨덴 말뫼에 도착

10시쯤 비가 그쳤지만 함부르크를 벗어나자 비구름과 함께 달렸다. 셀란 섬에 들어서서야 겨우 해가 나기 시작했다. 푸트가르덴에서 페리 타는 걸 포기하고 셀란 섬을 거쳐 말뫼로 왔다.

페리를 탔으면 200킬로미터 남짓 거리도 단축시키고 비용도 아낄 수 있었을 텐데 아무래도 예약하지 않고 가기엔 불안해 둘러가는 길을 선택했다. 셀란 섬을 거쳐 말뫼로 가려면 바다 위 다리를 세 곳이나 통과(톨게이트가 있는 다리는 두 곳이었다)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우리 돈으로 6만원(130+233 덴마크 크로네)이 넘는다. 덴마크를 지나가는 비용치고는 꽤나 비싼 셈. 함부르크에서 말뫼까진 약 510킬로미터.

페리를 이용해도 오토바이 선적비가 49유로니 이러나 저러나 치를 수밖에 없는 비용이다. 말뫼에선 하루만 묵고 바로 오슬로로.

뒷바퀴에서 뭔가 걸리는 듯한 소리가 나서 오슬로에 가서 점검해야 할 듯. 아무리 살펴봐도 걸릴만한 것이 없는데 툭툭거리는 소리가 난다. 체인 유격은 조절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휠베어링 문제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숙소 근처 작은 공원에서 열린 벼룩시장.
숙소 근처 작은 공원에서 열린 벼룩시장.

뒷바퀴 쪽에서 계속 소리가 나서 말뫼를 벗어나자마자 휴게소에서 모든 짐을 내려놓고 혹시 풀린 나사가 없나 일일이 조이고 체인 장력도 다시 조절했다. 매뉴얼에 나오는 값으로 정확하게 맞출 수는 없으니 눈대중 손대중으로 조절하는데 하다 보니 이것도 감이 잡힌다. 소음의 원인은 머플러 연결 나사였던 모양이다. 심하게 풀린 곳은 거기 밖에 없었고 작업을 하고난 이후에 소음은 사라졌다.

혹시나 부품을 교체해야 하는 문제였다면 난감했을 텐데 다행. 소음이 나면 어떻게든 해결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달릴 수가 없다. 소음이 나면 문제가 있다는 신호이고 그대로 방치하면 작은 문제가 큰 문제가 될 가능성 높다.

 

밤 11시가 다 된 시간이었지만 백야 현상으로 거리는 어둡지 않았다.
밤 11시가 다 된 시간이었지만 백야 현상으로 거리는 어둡지 않았다.

◇ 오슬로에서 P선생님을 만나다

말뫼에서 오슬로로 가는 길은 아름다웠다. 바다, 강, 호수, 들, 숲이 탁 트인 도로 양 옆으로 가는 내내 이어졌다.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자연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니 도로를 달리는 차들도 캠핑카는 물론이고 트레일러나 지붕 위에 자전거, 카약, 캠핑 장비를 이고지고 가는 차들이 많다. 경제적으로도 여유롭고 아름다운 자연환경까지 갖추었으니 이곳 사람들이 솔직히 부럽다.

그중 가장 부러운 것은 공기였다. 들숨에 폐가 깨끗한 공기로 부풀어 오를 때 그것만으로도 온몸이 상쾌해졌다. 집으로 돌아가도 이 기분은 잊지 못할 듯하다.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은 날은 더더욱 그렇겠지. 깨끗한 공기와 물을 마시고 사는 게 점점 힘들어지는 세상이니….

오슬로에서 P선생님을 뵈었다. 말뫼에서 하루만 묵고 급하게 오슬로에 온 이유도 선생님을 뵙기 위해서다. 선생님은 나와 같은 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스쿠터를 타고 출발했다.

함께 출발했던 6명중 세 분은 이미 한국으로 돌아갔다. 우리보다 한 주 앞서 출발했던 팀들도 모두 한국으로 복귀했다. 선생님의 스쿠터도 문제가 생겨 결국 이곳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려보낸 상태. 렌터카를 빌려 여행을 계속하실 생각이었으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 선생님의 마지막 목적지는 아이슬란드. 처음 계획은 스쿠터를 가지고 배로 아이슬란드에 가는 것이었다.

 

내가 묵었던 방에는 2층 침대가 13개나 있었고, 노동자들이 장기 투숙 중이었다.
내가 묵었던 방에는 2층 침대가 13개나 있었고, 노동자들이 장기 투숙 중이었다.

이렇게 다시 오긴 힘들 테니 렌터카를 빌려서라도 돌아보고 가시겠다고. 오슬로까지 온 이유는 선생님이 여행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오슬로에 있는 동안 렌트카 빌리는 걸 도와드리고 잠시 같은 숙소에서 지내기로 했다.

긴 여행을 떠나면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이런저런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오토바이 여행은 여러 장점도 있지만 오토바이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수습하기 힘들고 몸도 마음도 허물어지기 쉬운 듯.

생각지 못했던 비용이 드는 것도 문제. 집으로 돌아가신 분들이나 P선생님, 나까지도 모두 비슷한 문제를 겪었고 나는 운 좋게 여기까지 왔을 뿐이다.

선생님과 맥주잔을 기울이며 그동안 있었던 일을 서로 이야기했다. 두 달 넘게 달려왔는데 선명하게 기억 남는 건 몇 장면뿐이다.

복지 정책이 잘 되어 있는 선진국이라 해도 그늘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현재 묵고 있는 앤커 아파트는 오슬로에서 숙박비가 가장 저렴한 곳이고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크다. 거대한 합숙소 같은 곳인데 나 같은 여행자보다 오슬로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더 많은 듯하다.

 

노르웨이 국립극장.
노르웨이 국립극장.

어느 국가나 사회든 음지에서 일할 사람이 필요하고 그곳을 이주 노동자나 더 나은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채운다. 내가 묵는 방엔 13개의 2층 침대가 있고 대부분 새벽이나 밤에 일하러 나가는 사람들이 묵는다.

한 층에 이런 방이 몇 개인지 모르겠다. 커다란 빌딩 전체가 이런 방들이다.(물론 비싼 방도 있다.)

거의 기업형 숙박업소. 일자리라도 있다면 이런 곳에서 묵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잠잘 곳을 찾기도 힘들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곳에 묵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