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김여정의 강경 발언 이후 북한 당국은 연일 대남 선전포고식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들은 남북의 통신선을 전면 단절하고 대남관계를 ‘적대관계’로 바꾼다고 선포하였다. 남북연락사무소를 폐쇄하고, 9·19 군사적 합의마저 폐기할 의사를 표명했다. 폐쇄한 전방 GP를 복원하고 단거리 포사격 훈련도 재개할 의사까지 보이고, 개성공단 지역을 과거처럼 군사적 요충지로의 전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들은 남한은 이제 ‘괴로운 시간’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북한이 과거의 강경노선인 군사적 모험주의로 회귀한 배경은 무엇일까.

가장 직접적 요인은 그들이 밝힌 대로 탈북 시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행위이다. 북한은 ‘수령의 권위’를 손상하는 대북 전단 살포 행위를 경계하고 비난해 왔다. 그들은 전단 살포 행위의 주체가 일부 탈북 단체라는데 분노하면서 인간쓰레기라고 비난했다. 대북 전단에는 그들의 수령을 비하·비판하는 글귀로 채워져 있다. 여기에 미국 달러 1장과 남한 CD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그들은 더욱 싫어할 수밖에 없다. 북한 당국은 이러한 ‘국가 존엄’ 모독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남북 관계의 단절을 선언한 것이다.

북한의 노선 선회의 본질적 배경에는 북미 관계가 조금도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 그렇게도 기대했던 하노이 정상 회담은 결렬되고 말았다. 그간 싱가포르, 하노이, 판문점 3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은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난 셈이다. 북한 당국이 애원하는 북한 체제 보장과 북미 수교는 더욱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11월 대선을 앞둔 트럼프에게는 종래의 ‘벼랑 끝 전술’도 핵실험 위협도 통하지 않음을 인식한 것이다. 이러한 정황에서 북한은 트럼프를 직접 상대하기 보다는 남한 당국을 공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또 다른 강경 요인은 외재적 요인을 내부 주민 통치용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북한도 이미 정보화 사회에 진입했고 초보적인 시장 경제는 작동하고 있다. 김정일 시대보다 어려운 민생 경제는 카리스마가 약한 김정은 수령에게 향하고 있다. 더구나 유엔과 미국의 대북 제재는 북한 경제를 목 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황에서 ‘국가 존엄’에 대한 불만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외부의 적을 이용할 필요가 절박한 것이다. 북한 땅에서 학생, 청년, 군인들의 대남 선전 선동이라는 관제 시위에 연일 동원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북한의 대남 강경 노선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미국의 11월 대선이 끝날 때까지는 이러한 기조는 계속 유지 될 전망이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트럼프나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은 자제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내부적 통제를 강화하면서 대남 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정부는 북한의 태도 변화에 지나치게 민감할 필요는 없지만 강경 노선의 직접적 요인인 전단의 살포만은 막아야 한다. 그것은 4·27 판문점 선언이나 남북 군사적 합의에도 위배되고 남북 교류 협력법이라는 현행법에도 위반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조급히 대화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때를 기다리는 협상의 지연 전술도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