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경<br>동화작가
최미경
동화작가

석 달 만에 서울에 왔다. 약속시간보다 2시간 정도 미리 도착한 터라 홍대 근처 카페에 들어가 밀크티를 주문했다. 일요일 오전 9시, 게으른 햇살이 카페 안을 기웃거렸다. 진동벨이 울리길 기다리는 동안 천천히 매장 안을 둘러보았다. 1층과 지하 1층으로 연결된 카페 안은 노트북을 앞에 두고 각자의 작업을 하는 젊은 청년층들이 대부분이었다.

젊음, 그 찬란하고 불안한 시절을 건너가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며 부러운 마음과 안쓰러운 마음이 동시에 스쳤다. 그리고 창가 근처 테이블에 턱을 괴고 앉은 나에게 불쑥 미련스러운 생각이 밀려든다.

20년 전 서울에 그대로 남아 있었더라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일까. 결혼은? 아이는? 일은?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까…. 아닐까.

그 짧은 물음이 나를 흔드는 사이, 잠들어 있던 내 안의 ‘만약’과 ‘혹시’와 ‘어쩌면’이 부스스 일어나 2020년 6월의 나를 2000년 6월의 나에게 데려다 놓았다.

그해 6월, 나는 서울역 플랫폼에 서 있었다. 선로를 타고 뜨거운 바람이 밀려들었다. 부산행 열차가 막 들어오고 있었고 어린 나는 바닥에 있던 가방을 어깨에 매고 노란선 뒤로 한발 물러나고 있었다. 열차 문이 열리자 그녀가 터벅터벅 열차로 향했고 나는, 어느 틈엔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녀가 돌아보았고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안 가면 안 돼?

내가 먼저 물었다. 그녀의 얼굴엔 당황스러움이 스쳤고 반가움이 지나갔고 쓸쓸함이 머물렀다.

-어때? 그곳은?

그녀가 던진 뜻밖의 물음에 나는 혼란스러웠다.

-너는 어떤데?/네가 더 잘 알잖아/잘 모르겠어. 안다고 생각했는데 2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잘 모르겠어.

내 말에 그녀는 푹, 하고 웃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렇구나, 나는 그때도 여전히 헤매고 있구나.

그녀의 말에 손에 힘이 풀렸다. 그리고 잠시 웃었던가. 나는 그녀의 손목을 놓았다.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지금의 내가 조금은 다행스러웠던 걸까. 가 보지 못하는 길을 코앞에 두고 그녀는 내가 걸었던 그 길로 들어섰다. 그녀를 실은 부산행 열차가 플랫폼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주문한 음료가 나왔음을 알려주는 진동벨이 울릴 때까지 나는 그곳에 서 있었다.

그랬다. 서울을 떠나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중심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했었다. 그 중심이라는 것이, 타인이 만들어놓은 중심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늘 불안했다. 그러는 사이,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양육을 했다. 첫째를 키우고 둘째와 셋째를 키우는 동안 나도 함께 커나갔다. 그렇게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조금씩 밀려나고 주변이라고 밀어냈던 것들이 내 삶을 채워나갔다.

물론 지금도 나는 여전히 헤매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안다. 내가 믿었던 중심이 중심이 아닐 수도 있다는 유연성, 그걸 인지할 때 비로소 진정한 중심이 보인다는 걸. 학교를 졸업하고서 20년 만에 배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