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희<br>인문글쓰기 강사·작가<br>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앞자리에 6자를 달고 나니 생각이 많아진다. 그때 무엇을 선택하면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그중 하나다. 고3 가을에 문과로 바꾸지 않았다면 지금 내 삶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대학원 때 전공을 바꾼 것, 논문 쓰기보다 생협 활동에 더 열을 올린 일들이 꼬리를 문다.

되돌아보면, 그 전환들은 이성적인 선택이 아니라 조건에 떠밀려 감정적으로 결정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결정과 선택은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질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일이다. 영화 ‘미스터 노바디’의 주인공 니모도 자신의 지난날이 선택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영화의 설정은 매우 특이하다. 니모는 6개의 시간 차원으로 이루어진 평행 우주를 경험한다. 평행우주는 니모가 아홉 살 때 부모가 이혼하는 순간부터 시작한다. 한 우주에서는 엄마를 따라가고, 다른 우주에서는 아빠 곁에 남는다. 각각의 우주마다 결혼하는 여자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다. 그러나 니모가 자신을 ‘노바디’라고 부르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떤 우주에서도 행복하지는 않다. 니모는 사고로 죽거나 물에 빠져 죽거나 꿈에서 깨는 등 비자발적 방식으로 다른 우주로 간다. 그런 이동은 니모의 삶이 주체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영화는 상당히 극적인 설정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결정이 선택이 아닐 수 있음을 깨우쳐준다. ‘믿음의 배신’에서 저자 마이클 맥과이어는 메뉴를 고르고 여행지를 선택하고 자유의지로 선택한 행동들이 실제로는 기억이나 경험에서 영향을 받았거나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자극을 고르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니모가 안나를 사랑하는 것 역시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

그동안 니모는 사고나 꿈 깨기 등 비자발적 방식으로 다른 우주로 이동했지만, 2092년 117세의 니모는 영원히 살 수 있는 세포재생술을 거부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그 후 니모는 부모님이 이혼하던 9살로 다시 돌아가서 엄마와 아빠의 요구를 거부하고 제3의 길로 달려간다. 니모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의 삶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죽음을 ‘선택’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이후 펼쳐질 니모의 삶이 장밋빛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니모가 지난 여러 번의 삶보다 행복할 가능성은 더 많다. 무엇보다 니모는 자신을 더 이상 ‘노바디’라고 부르지 않게 될 것은 확실하다.

한 연구에 의하면,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는 감정적이 될 가능성이 많다면서 ‘왜’를 질문하라고 한다. ‘왜’를 질문하다 보면, 의식하지 못했던 자기 안의 비합리적 믿음을 발견하고 감정적으로 치우치는 것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3 가을이 다시 떠오른다. 왜 문과여야 하는지 조금 더 질문했더라면 그것이 결정인지 선택인지 더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자꾸만 찾아오는 의심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에 떨고 싶지 않다면, ‘왜’라는 질문으로 선택하려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