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국민 여러분. 뭐든지 말해 보세요. 다 들어보고 결국은 내 마음대로 하겠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소통(疏通) 방식을 놓고 시중에 나도는 눈물 나는 패러디다. 여야 수뇌부가 청와대에 모여서 ‘협치’ 합창을 부른지 불과 며칠만에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이 펼치기 시작한 뒤끝 작렬, 일방통행, 승자독식 행태가 가관이다. 총선에서 대패한 미래통합당은 꽤 오래도록 힘을 쓰기 어렵게 생겼다.

‘법대로’에 대한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의 현란한 마술부터 시작됐다. 민주당은 ‘총선 후 첫 임시회를 의원 임기 개시 후 7일 이내에 개최한다’는 국회법 5조 3항의 개원 규정을 존중해야 한다면서 53년 만에 단독개원을 강행했다. 지난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 본회의 표결 당시 기권표를 던진 금태섭 전 의원에게 뒤늦게 ‘경고’ 징계 처분을 내렸다. ‘의원이 소속당의 의사에 귀속되지 않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는 국회법 114조 2항은 존중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 조치가 앞으로 민주당을 일사불란, 만장일치, 단일대오 형태의 독재정당으로 운영하겠다는 신호탄이라는 점이다. ‘비민주적’이라는 지적을 반박한 이해찬 대표의 논리는 해괴하다. 그의 궤변을 요약하면 “당 대표가 먼저 말하지 않고 의견 다 들어본 다음 마지막에 마음대로 정리해 얘기하면 그게 민주주의” 정도로 된다.

177석 민주당의 의기양양은 무시무시하다. 민주당 이수진 의원은 자신에게 실력이 없다고 폭로한 법관에게 “탄핵하겠다”며 복수의 칼을 내밀었다. 재판과 옥살이까지 다 끝난 한명숙 전 총리 사건도 뒤집겠다고 나섰다. ‘예술·학술·보도 등의 목적’으로 하는 표현의 자유까지 말살할 수 있도록 한 5·18 광주민주화운동 왜곡행위 처벌법도 결국 통과시킬 것으로 예측된다. ‘친일’ 목록에 들어간 유공자들은 국립묘지에서 파묘(破墓)를 당해 부관참시의 횡액을 당하게 생겼다.

30년간이나 위안부 피해자들을 앵벌이 수단으로 악용했다가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로 위기에 몰린 윤미향 의원도 민주당 대표의 강력한 비호 아래 당분간 무사할 것 같다. 대한민국은 지금 또 하나의 잔혹한 ‘승자의 역사’를 기록하는 중이다.

통합당의 최연소 남성 당선인 김병욱(포항남구·울릉) 의원이 언론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의 필요성을 거론했다. 불과 8%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도 의석수는 177대 103이 돼버린 소선거구제의 모순을 지적한 발언이다. 그러나 거대 여당 민주당은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다.

‘중대선거구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역주의 극복과 정치 다양성 수렴, 사표(死票) 방지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제도였다. 미래통합당은 ‘승자독식(勝者獨食)’의 꿀단지에 빠져 살던 긴 세월의 모순을 반성해야 한다. 지금 초라한 제1야당이 되어 당하고 있는 능멸은 그 어리석은 권력 놀음의 쓰디쓴 업보다. ‘견제와 균형’의 미덕이 사라져가는 여의도 국회는 지금 승자독식의 저주에 휩싸인, 이 나라 민주주의의 쓸쓸한 무덤이 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