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연의 끈으로 묶인 물건들.

26년 된 전자레인지를 버렸다. 콘센트에 꼽혔던 플러그를 뽑을 때마다 뻑뻑하니 쉽게 놓아 주지 않아 힘껏 잡아당기다보니 전선이 살짝 드러나 위험했다. 또 오래 사용하다보니 레인지 속이 데우던 음식이 끓어 넘쳐서 얼룩투성이가 되었다.

하지만 쉽게 버리지 못했다. 물건에도 감정이입을 하는 편이라 그렇고 사연이 있는 물건은 더더욱 못 버린다. 이 전자레인지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사주셨다. 남편과 신혼여행을 다녀와 신접살림을 날 때 필요한 게 무어냐 묻고 싶으셨는지 시동생을 보내 신혼집을 확인하게 하셨다. ‘살림이 뭐 뭐 있드노?’ 하시면서.

결혼할 그 즈음 무척 가난했었다. 쥐꼬리보다 작은 월급은 엄마에게 모두 드려 집안 살림에 보태야했기에 차비조차 받아썼다. 아직 학생인 남동생이 둘이라 쪼들리는 엄마는 내 월급으로 결혼 자금 같은 이름으로 모아 둘 형편이 못 됐다. 아버지 혼자 벌어서 다섯 가족이 살아가기에 엄마의 가계부는 늘 숨이 찼다.

남편과 사귀기 시작하며 그 달치 월급부터 내가 쓰겠노라고 어렵게 말을 꺼냈을 때, 엄마는 몇 달 나와 말을 섞지 않았었다. 불편한 하루하루를 버티며 모은 돈으로 겨우 기본 살림을 장만할 수 있었다. 냉장고, 텔레비전, 세탁기 셋 다 작은 크기로 그것도 한 시즌 지난 이월 상품으로 하니 반 가격에 살 수 있었다. 장농과 삼단서랍장은 번듯한 이름표도 달지 못한 채 실려와 신혼살림의 구색을 맞추고 있었다. 25평 아파트가 휑하니 30평으로 보였다. 그 살림에 어머님이 전자레인지를 보태신 거다. 새로 들어온 며느리에게 가져온 지참금이 적다고 잔소리 하나 없이 부족한 구석을 채워주셨다. 그날 어머님도 똑같은 걸로 시댁에 처음 신문물을 들이셨다. 그렇게 양쪽 집에서 26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했다.

낡고 선이 드러나도 음식 데우기만 하면 되기에 버리지 말자고 남편을 졸랐지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자며 리모델링하려고 이사하는 날 과감히 종량제스티커를 붙여서 버려버렸다. 무엇을 간직하려면 누가 뭐라고 해도 버티는 뚝심이 있어야 한다. 내겐 그게 부족했다. 부족한 마음이 후회가 된 것은 며칠 후였다.

잠시 머무는 아파트에 이사를 해놓고 시댁에 다니러 갔다. 아버님 댁에 새 전자레인지가 놓여 있었다. 어찌된 일인가 하고 여쭈니, 며칠 전 그냥 불이 들어오지 않더란다. 고장이 나버린 것이다. 우리 집 것을 버리던 그즈음 어머님 것도 생을 마감해버렸다는 것이다. 우연일 것이다. 그래도 눈이 시큰했다. 만약에 어머니였더라면 하는 생각이 앞섰다. 아들이 선물한 전자레인지였다면 고장이 나서 먹통이 되어 쓸모가 없어졌더라도 무엇이든 넣어두는 보관함으로 변신시켜서 살려두셨을 것이다. 집안에는 어머님이 그렇게 들였다가 붙박이가 된 물건들이 쌓여있다.

김순희수필가
김순희수필가

골동품이 되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있다. 태어난 지 오래되어야 하고 희귀한 물건이어야 한다. 두 가지 이유가 달리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흔한 물건이라도 오래 쓸고 닦아 보관하면, 시간이 희귀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남들이 다 분리수거 할 때 아끼고 살펴 보관해야 골동품이 되는 것이다. 어머님은 사람도 물건도 아끼는 분이셨다. 어머님이 내게 처음 사주신 선물을 그냥 떠나 보내버린 것이다. 내가 놓아버린 그 끈 끝에 어머니가 계셨다.

한 달여 집을 고치는 동안 남편과 나는 새살림 장만에 들떴다. 장농은 붙박이장으로 맞추고, 침대와 소파를 보러 돌아다녔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바람처럼 훌쩍 지나 새집에 입주했다. 집을 새로 단장한다는 소식에 가까이 사는 경희가 전자레인지를 선물했다. 멀리 수원 사는 정원이가 에어프라이어를 보내왔다. 또 다른 끈이 내게로 와 손을 잡는다. 이 소중한 인연의 끈이 끊어지지 않고 오랜 시간을 버티도록 매일 쓸고 닦을 것이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우리 집의 골동품이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