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열 한동대 교수
장규열 한동대 교수

미국이 흔들린다. 코로나19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내지 못하여 아슬아슬하였다. 방역이 시급하면서도 경제를 위한 대책에 급급하였다. 하필 이런 가운데, 백인 경찰이 흑인 용의자를 폭력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미국 내 흑인단체들은 물론 유색인종 시민들이 충격 속에 항거시위에 돌입하였다. 그런 와중에 약탈과 방화까지 벌어져 미국 대통령은 오히려 거센 비난과 함께 진압에 노력하며 정치적 행보만 거듭하고 있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도 가물거린다. 미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한 것을 시작으로 파리기후변화협약과 유네스코(UNESCO)에서 벗어나더니 이제는 국제보건기구(WHO)에 대한 지원도 중단하였다. 자국의 이익에 집중한 나머지 글로벌 환경에서 리더의 위치를 스스로 포기하는 모양새가 아닌가. 국제정치의 질서를 다시 만들려는 노력이 보이지만, 다시 한번 대결과 갈등의 구조를 시도하여 신냉전의 기운이 드리우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차별과 혐오의 맨 앞에 미국이 서 있다. 사람을 피부색으로 차별하는 참으로 어처구니없이 낡은 생각이 아직도 살아있다니! 그것도 문명국가들 가운데 가장 앞서간다는 미국에 여지껏 인종차별이 횡행한다니. 코로나19가 요청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인종차별을 거부하는 시민들의 거센 시위물결에 힘을 잃고 말았다. 안팎으로 켜켜이 쌓인 난제들을 미국과 미국 시민들은 어떻게 이겨낼 것인지 멀리서도 불안하기 이를 데 없다. 한때 가서 살고 싶었던 나라 미국의 영광은 이제 저무는 게 아닌가.

대한민국도 어렵다. 코로나19는 떠나가지 않으면서 학교와 교회 등의 언저리를 긴장시키고 있다. 선생님들은 오랜만에 만난 학생들과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집중하려 하지만 이미 어그러진 배움의 마당이 안정을 찾으려면 긴 시간이 들 모양이다. 갈 길이 아직도 멀지만 다른 나라들과 견주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헬조선’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대신, 우리 안에서 발견하는 강점과 장점을 키워가려는 노력과 다짐이 보인다. 절망은 희망으로 바꾸고 낙담은 기대로 바꾸어 내리막을 오르막으로 만들어 낼 의지를 키워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불러내었다고 한다. 함께 하겠다는 응수를 던지기는 했지만, 편가르기에 훈수를 더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이제는 국격이 올라간 만큼 다른 나라들을 설득하고 격려해 지구 상에 평화와 번영을 앞당기는 첫 자리에서 대한민국을 보았으면 한다. 차별과 혐오를 이겨내는 묘수도 전해주는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21세기에 인종차별이 말이나 되나. 지난 세월 겪어온 수다한 경험과 고난이 이제는 남들에게 알려줄 소중한 지혜와 자산이지 않을까.

‘대한민국이 있어 다행이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팍스 코리아나’를 기대하는 건, 너무 성급한 생각일까. 세상이 어려울수록, 준비된 자가 누구인지는 어렵지 않게 드러날 터이다. 코로나는 가라, 헬조선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