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프랑스의 거리를 거닐며

파리 시내 중심에 우뚝 솟은 에펠탑은 유리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 유럽의 중심 파리에 도착하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에 파리 같은 대도시로 들어가는 건 굳이 예상하지 않아도 고생길이 될 게 뻔하다. 차량 정체는 기본이고 길이 익숙지 않아 갈림길에서 착각해 엉뚱한 곳으로 빠지기라도 하면 난감하다. 그래서 미리 지도를 여러 번 확인하고, 특히 숙소 주변 지리를 머릿속에 넣어두어야 한다. 지금까지 오토바이로 가본 곳 가운데 가장 운전하기 어려웠던 곳은 부산이었고(하필 휴대폰이 없었다), 그 다음은 도쿄였다. 고가도로가 많은 도쿄에선 툭하면 GPS 신호를 잡지 못해 도심을 빠져나오는데 애를 먹었었다. 그 다음이 서울이다. 서울과 부산에서 운전을 어렵지 않게 하는 사람이면 유럽 도시쯤은 식은 죽 먹기가 아닐까. 지도 어플인 구글맵과 맵스미의 기능이 출중해서 갈림길에서만 집중하면 목적지까지 운전하는 건 어렵지 않으리라. 하지만 길이 막히거나 꼬불꼬불한 골목이 많은 구도심에서 길을 헤매는 건 어느 정도 각오해야만 한다.

 

파리뿐만 아니라 유럽 대부분 도시에선 쉽게 오토바이 주차장을 만날 수 있다.
파리뿐만 아니라 유럽 대부분 도시에선 쉽게 오토바이 주차장을 만날 수 있다.

금요일에 파리로 들어간다는 게 꽤나 부담스러웠는데 오히려 파리에서 시외로 나가는 도로의 정체가 심했고 상경길은 거의 막히지 않아 수월하게 숙소가 있는 곳까지 왔다. 프랑스의 바캉스는 7월 14일 프랑스 혁명 기념일쯤부터 시작이라는데 폭염이 계속되다 보니 아예 일찌감치 파리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파리 도착 100킬로미터 전부터 하행선은 차들이 가다서다 반복 중이었다. 파리로 들어가는 상행선은 막힘없이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내가 묵는 곳은 6층짜리 옛날 아파트를 개조한 호스텔, 엘리베이터가 없고 좁은 원형 계단을 걸어 올라야했다. 배낭이 계단 난간에 걸릴 정도로 비좁았다. 최대한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선 원형 계단 외엔 방법이 없을 듯. 가구들은 어떻게 방으로 옮겼을지 궁금하다. 숙소에서 에펠탑까진 약 4킬로미터 거리. 오토바이는 숙소에 주차장이 없이 길에 세워두었다. 주변에 주차해둔 오토바이가 많다. 숙소를 예약할 때 ‘구글 스트리트뷰’로 주변에 오토바이를 세울만한 곳이 있는지(다른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는지)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대도시 숙소는 주차장이 있는 곳은 비싸고 따로 주차비를 내야하는 곳이 많아 딱히 다른 방법이 없다. 골목길에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고 사람들의 통행에 크게 지장을 주지 않으면 눈치껏 다른 오토바이 곁에 세운다.

 

샹젤리제 거리의 루이뷔통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 관광객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샹젤리제 거리의 루이뷔통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 관광객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 콩코드 광장에서 개선문까지 걷다

숙소에서 하룻밤 푹 자고 아침 일찍 파리 시내 관광에 나섰다. 콩코드 광장, 샹젤리제 거리, 개선문, 에펠탑으로 한 바퀴 돌고 버스 타고 몽파르나스 빌딩까지 와서 걸어서 숙소에 왔다. 메트로 6호선 일부 구간이 공사 중이어서 이 구간 안에서 운행하는 버스를 무료로 탈 수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이나 오르셰 미술관은 아예 갈 생각이 없었다. 관광객이 몰리는 주말에 그런 곳에 가면 제대로 관람하기도 힘들 뿐더러 피로만 더하기 십상이다. 아쉽지만 차라리 그 시간에 어디 공원이나 골목길을 걷는 편이 낫다.

7월 14일 혁명기념일에 퍼레이드가 있는지 콩코드 광장에서 개선문으로 이어지는 샹젤리제 거리에는 한창 관람석과 무대를 만들고 있었다. 곳곳에 경찰이 경비를 서고 있고 일부 도로는 통제 중이었다. 샹젤리제 거리는 세계의 명품 브랜드를 모두 모아놓은 듯.

특히 루이뷔통 매장 앞에는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쇼핑백을 들고 활짝 웃으며 나오는 손님 중 절반 이상은 아시아인인 듯했다. 그 앞에서 잠시 쉬며 숫자를 헤아려 봤다.

 

센 강변의 헌책 노점들. 책에 관심을 갖는 관광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센 강변의 헌책 노점들. 책에 관심을 갖는 관광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도시의 규모, 특히 수도의 규모는 그 나라가 가진(혹은 가졌던) 권력의 크기와 비례한다.

한때 유럽을 제패하고 광활한 식민지를 가졌던 프랑스의 수도 파리는 한때 그 권력의 정점에 있던 곳이다. 유럽의 국가들은 번영했던 시절 넘치는 부를 도시를 키우고 기념물을 세우는 데 썼다. 파리는 유럽의 도시 중 가장 선명하게 권력과 부의 크기를 보여주는 곳이라 생각한다.

그 시절 축적해둔 것만으로도 파리는 여전히 영화를 누리는 중이다. 개선문에선 무명용사에 헌화하는 백발성성한 노병들의 행진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들인 듯. 히틀러는 1차 세계대전 패전을 앙갚음하며 파리 개선문을 통과해 에펠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나폴레옹이 1805년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연합군에게 승리를 거둔 아우스터리츠 전투 후 짓기 시작했으나 생전 완공을 보진 못했다.

에펠탑은 주변이 유리벽으로 막혀 있고 티켓을 구입해야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역시나 줄이 길었다. 한번 올려다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근처 공원 나무 그늘 밑에서 한참 쉬었다. 주변에 에펠탑 기념품을 파는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관광객은 많았지만 구입하는 사람들은 거의 보질 못했다. 저 사람들은 저리 팔아서 밥 먹고 살 수 있을까, ‘에펠탑 기념품도 책만큼 안 팔리는구나’ 하고 잠시 쓸 데 없는 걱정을 했다.

 

콩코드 광장에서 샹젤리제 거리를 따라 계속 걷다보면 개선문을 만나게 된다.
콩코드 광장에서 샹젤리제 거리를 따라 계속 걷다보면 개선문을 만나게 된다.

◇ 사람들로 북적이는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파리의 마지막 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이곳저곳 다니는 게 제법 익숙해질만 하면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게 아쉽다. 여유가 있다면 파리에선 한 달쯤 지내며 꼼꼼하게 돌아보아도 좋겠다. 오고 가는 날을 제외하고 딱 이틀 동안 파리에 머무르며 다니는 것만으론 한참 부족하다.

이렇게 화려하고 큰 도시를 단 3일만 있다 떠나야 한다니. 여행을 떠나기 전 가보려고 계획했던 곳의 아주 일부만 둘러보았을 뿐이다. 파리뿐만 아니라 다른 곳도 마찬가지. 이동하는 데만 많은 시간과 체력을 쓰고 집중해야 하니 실제 무언가 보고 느낄 시간은 모자라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마음에 드는 곳이라도 마냥 시간을 지체할 수도 없다.

오전엔 바케트와 우유를 사서 파리의 14구 골목길을 산책했고 오후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근처를 돌아다녔다. ‘셰익스피어’도 렐루서점과 마찬가지로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기대했던 것만큼 멋진 곳이었고 찬찬히 둘러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문 열자마자 첫 손님으로 입장하지 않는 이상 이 ‘유명 서점’에서 찬찬히 서가를 둘러보고 책 냄새를 맡고 고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여러 영화에 등장해 유명해진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여러 영화에 등장해 유명해진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근처 센 강변엔 헌책을 파는 노점들이 있지만 책을 고르는 손님들보다 기념품을 구경하는 손님들이 더 많았다. 책만 파는 가게보다 기념품을 함께 취급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화재 사고가 났던 노트르담 대성당을 보고 페르 라셰즈 묘지로 가기 위해 강변을 걸으며 헌책 파는 노점을 여러 곳 유심히 보았지만 책을 사 가는 사람들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책이 아닌 공간을 ‘소비’하기 위해 서점을 찾는 것일 수도.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와 센 강변의 헌책노점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후 6시 해가 아직 중천에 있었지만 페르 라셰즈는 묘지에 갔다가 쫓기듯 나오고 말았다. 이곳엔 알퐁스 도데, 에디트 피아프, 짐 모리슨… 세상을 떠나고도 이름을 남긴 사람들이 묻힌 곳이다. 묘지에는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과 그들의 묘를 찾을 수 있는 지도가 있다. 이름을 기억할만한 이가 100명이 넘는다. 파리는 이곳에 묻힌 사람들 때문에 더 많은 것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숙소에 돌아와서 미리 짐을 쌌다.

내일은 아침 일찍 암스테르담으로. 이제 북유럽으로 간다.    /조경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