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br>경북도청본사 취재본부장
이창훈
경북도청본사 취재본부장

중세 말기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이 발발하자 영국과 가장 가까운 프랑스의 항구도시 칼레는 영국군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칼레 사람들은 시민군을 조직해 맞서 싸웠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끝내 항복하고 말았다.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파격적인 항복 조건을 내걸었다. “시민들 중 6명을 뽑아 와라. 그러면 칼레 시민 전체를 대신해 처형하고 나머지는 사면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칼레의 갑부 생 피에르를 비롯한 고위 관료와 부유층 인사 6명이 자원했다. 이들은 목에 밧줄을 걸고 맨발에 자루 옷을 입고 영국왕 앞으로 나왔다. 사형이 집행되려는 순간 임신 중이던 영국왕의 왕비가 처형을 만류했다. 이들을 죽이면 태아에게 불행한 일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이유였다. 왕은 고심 끝에 이들을 풀어 주었고 6명의 시민은 칼레의 영웅이 됐다. 이것이 가진 자의 의무를 상징하는 ‘노블레스(귀족) 오블리주(의무)’가 탄생된 배경이다. 원래 노블레스는 닭의 벼슬을 의미하고, 오블리주는 달걀의 노른자라는 뜻이다. 이 두 단어를 합성해 만든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닭의 사명이 자기의 벼슬을 자랑함에 있지 않고 알을 낳는 데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작금의 현실을 보면 우리나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요즘 언론의 화두는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당선자의 거취다. 그는 정의기억연대를 이끌다 최근 국회의원에 당선됨과 동시에 여러 가지 문제로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 중심에 위안부 피해자로 오랫동안 활동한 이용수 할머니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문제는 사회적 통념이나 법으로 다뤄 바로잡으면 된다. 법의 심판은 법원에서 받고, 사회적 정서와 국민의 감정 등을 고려한 의원직 면탈은 자신이 소속한 당에서 결정하면 끝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본질이 왜곡되면서 당리당략적 정쟁으로 흐르고 있다. 지난 30년간 일본군 ‘위안부’ 운동 방향을 돌아보자는 이용수 할머니가 요구한 본질은 간데없고 인신공격만 난무하는 등 본말이 전도되고 있다. 이 가운데 다선 국회의원들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호위무사로 방어벽을 치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대표로 ‘선량(選良)‘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하지만 선량은 간데없고 ‘노블레스 말라드(Noblesse Malade)’, 즉 욕심에 가득찬 귀족만 가득하다는 생각이다.

경북도의회도 다음달이면 새로운 지도부가 구성된다. 오랫동안 일당중심으로 오다 2년전부터 여·야당이 함께 동고동락해오고 있다. 그동안 크고 작은 불협화음도 있었지만 모두 다 시도민을 위한 업무 중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다수당은 좀 더 아량을 베풀고, 소수당은 억지보다는 실리에 방점을 찍는 실사구시를 추구, 협치로 나가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프랑스의 작은 지방에서 싹텄듯 경북도의회가 타시도의 모범이 됐으면 한다.

단 6명의 지도자가 칼레를 구한 것처럼 세상을 밝히는 등불은 아주 작은 불빛에서 시작된다. 희생과 나눔을 의무로 여긴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욱 밝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