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된 포항 카페 아라비카.
30년 된 포항 카페 아라비카.

한 자리에서 몇 십 년 음식 장사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단골이 많이 생길 때까지 지치지 않아야 하고, 제대로 된 맛을 유지해야 하고, 무엇보다 주인장이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그 자리를 지켜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초심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30년 동안 커피를 내려온 가게가 있다. 포항 죽도시장 가까이 상가들이 어깨를 맞댄 거리에 아담한 양옥 한 채가 얌전히 앉았다. 붉은 장미넝쿨을 울타리에 얹고 ‘아라비카’라는 동그란 명찰을 마당가에 세워놓지 않았다면 손끝이 매운 주인이 정원을 잘 꾸며 놓은 가정집으로 보일 뿐이다.

가게로 오르는 계단참에는 분홍낮달맞이가 도란거리고, 한 발 올라서니 벌이 열심히 꿀을 따고 있는 나무 한 그루가 문지기처럼 지키고 섰다. 하얀 꽃이 미리 진 곳엔 작은 열매가 달렸고 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 열매가 빨갛게 익은 또 한 그루가 손님을 맞는다. 커피나무였다. 나무를 보고 예뻐서 카운터에 선 주인장에게 직접 키운 것이냐 여쭈니 ‘저 혼자 컸지요.’ 한다. 1991년에 카페를 시작할 때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냐는 질문에도 ‘그냥 먹고 살려고 했지요 무슨 큰 뜻이 있었을까요, 하다 보니 좀 더 좋은 맛을 내려고 커피에 대해 공부하게 되고 원두도 직접 골라서 로스팅 하는 법도 배우다보니 지금껏 하고 있다’고 했다.

실내는 30년 전 처음 찾았을 때 그대로다. 살림집으로 지은 지 10년 된 건물에 유리창만 달아내 가게를 열었다. 그 후 30년이 지나도록 벽지만 가끔 새로 할 뿐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했다. 벽지도 다시 찾아온 손님이 생경해하지 않도록 비슷한 분위기로 한다는 말에 아, 이런 것까지 신경을 쓰고 있었구나싶어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카운터 옆 박스형 코너에는 커피를 드립 하는 남자 그림이 걸렸다. 주인장을 그린 그림 같다고 했더니, 서울에 사는 여대생이 잡지에 인터뷰한 모습을 보고 커피로 그림을 그려 보내왔더란다. 마음이 담긴 선물이라 걸어두고 본단다. 그러면서 ‘이 박스가 뭔지 아시죠?’라며 되묻는다. 자세히 보니 지역번호가 표시된 전국지도가 붙었다. 그제야 기억이 났다. 공중전화박스였다. 머지않은 과거에 이곳에 줄을 서서 오지 않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고, 8282라고 삐삐를 쳤었다. 공중전화는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없애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어서 우리를 그 기억속의 그날로 데려간다.

마침 스피커에서 ‘I love coffee, I love tea’가 울려 퍼졌다. 갈색 진한 커피향기도 따라 울렸다.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며 예쁜 정원이 내다보이는 창가에 자릴 잡았다. 안주인이 메뉴판을 가져다준다. 몇 쪽이나 될 만큼 다양한 커피와 티 종류라 취향에 맞는 커피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카페인에 약한 나는 순한 맛으로 골랐다. 요즈음 대부분의 카페와 달리 이집에서 손님은 마냥 제자리에서 수다만 떨어도 커피를 가져다준다. 아주 매력적이다.

김순희수필가
김순희수필가

커피를 내리는 사이 추억여행을 했다. 오래전 같은 자리에서 소개팅을 했다는 L양, 서울에서 포항으로 출장 온 아가씨를 이곳으로 데려와 점수를 딴 K군. O양은 늘 커피 값을 내고 거스름돈으로 교회헌금을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빳빳한 새 돈을 은행에서 바꿔와 나가는 손님에게 봉투에 고이 넣어 건네주는 이집만의 좋은 풍습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되도록 새 돈으로 거슬러주려고 한다며 금고에서 꺼내 보여주는 모습에 변함없는 친구를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안주인이 내려 준 커피 맛도 변함없다. 나오는 길에 박물관을 방문한 듯 로스팅한 ‘브라질 파젠다 프로그래소’ 알갱이를 기념 굿즈로 샀다. 천장까지 닿아 붉은 커피콩을 한껏 달고 있는 나무가 부러워 묘목 한 그루도 샀다. 다 익은 콩을 심어서 50여일이 지나야 싹이 튼다는데 2년의 시간을 간직한 녀석으로 골라 업어 왔다. 한 잔의 커피와 한 그루의 나무를 안겨준 카페 아라비카는 우리의 청춘이 묻어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