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근처에나 돌아다니려던 것이 나도 모르게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습관은 무섭다. 하기는 뭘 쓰려 해도, 읽으려 해도 전철 타고 철커덩거리며 앉아 가는 맛이 나쁘지 않다.

그런데, 참, 마스크가 없다. 없으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에 약국으로 향한다. 오늘은 내 주민등록번호 끝자리 날은 아니다. 그래도 요즘에는 급히 살 수도 있다고 했다.

과연, 약국에서는 컴퓨터인가에 무슨 기록을 하고 마스크를 선뜻 내어준다. 사천오백 원, 세 장짜리 한 묶음이다. 다행이면서도 약간은 서운한 느낌, 왜냐하면 한 장, 한 장 따로 포장한 마스크 여는 맛이 보통 아닌 것을, 이건 세 장을 하나로 포장한 상품이다.

아쉬운 대로 마스크를 확보했다. 전철 역으로 들어서며 내 심각한 건망증을 잠시 탓해 본다. 학교 연구실 책상에도 두 장이 널려 있고 집에도 또 두어 장 걸려 있고 자동차 안에도 있고 가방 안에도 있는데, 또 사버린 것이다.

지하철 안은 자못 한산하다. 책을 읽으려 했는데 정작 앉고 보니 책이 유튜브를 이겨내지 못한다. 휴대폰 이어폰을 꽂고 일본 코로나19 상황에 관한 뉴스를 듣는다. 전철 안에 서 있는 사람은 없고 모두 마스크를 엄숙히들 쓰고 앉아 있다.

마스크도 참 제각각이군, 하는 재밌는 생각이 난다. 연예인 마스크라나, 얼굴 전체를 복면을 쓰듯 까맣게 가린 마스크도 있고 하얀 것도 있고 하늘색 것도 있다. 헝겊 마스크 안에 필터를 갈아 끼울 수 있도록 한 제법 비싼 마스크도 있고, 한 장에 오백 원씩 그냥 마스크 흉내만 낸 것 같은 마스크도 있다.

오늘인가, 어젠가부터 마스크 안 쓴 사람은 버스나 택시, 전철조차 탈 수 없게 되었다. 승차 거부가 가능하다니 말이다. 비행기도 곧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 한다던가.

그래도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정은경 씨의 질병관리본부가 살신하고 있지만 어제는 쿠팡과 마켓컬리 물류센터에서도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 학생들이 등교하면 더 큰 일도 일어날 수 있다.

바야흐로 무산된 도쿄 올림픽 대신 코로나19 올림픽 시절. 어느 나라가 더 잘 막느냐 ‘게임’이다. 한국은 지금 수위를 달리는 중. 일본의 아베와 나팔수 언론들처럼 요행수를 바라고, 민족이 우수해서 덜 걸리고 있다는 식으로 안심할 수는 없다.

다들 마스크를 썼다고 생각하니 뭔가 든든한 느낌이다. 더구나 오늘의 내 마스크는 KF94다. KF라는 말은 ‘Korea Filter’의 약자란다. 이 필터 등급은 KF80, KF94, KF99 등이 있고, KF94 마스크는 0.4μm 크기 미세입자를 94% 이상 차단해 준다는 뜻이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