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래<br /><br />시조시인<br /><br />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찔레꽃이 한창이다. 입춘 무렵 매화에서 출발한 꽃들의 릴레이가 진달래, 벚꽃, 복사꽃, 아카시아꽃에 이어 찔레꽃이 배턴을 받았다. 밤꽃과 싸리꽃이 저만치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같이 피는 다른 꽃들도 많지만, 그리고 사람에 따라 다르기도 하겠지만 내겐 아무래도 앞에서 꼽은 꽃들이 대표주자 인 것 같다. 흔히들 이맘때를 장미의 계절이라고도 하지만 내게는 그보다 찔레의 계절이다. 꽃의 여왕이라는 장미의 화사함보다 찔레꽃의 소박함이 더 내 정서에 친근하게 와 닿는다.

찔레꽃이 필 때쯤이면 뻐꾸기가 울기 시작한다. 봄부터 울던 산비둘기가 목이 쉴 때, 초여름 숲의 침묵을 깨뜨리고 뻐꾸기소리가 터진다. 이른 봄부터 숲이 품어온 적막의 유정란이 마침내 부화를 한 것이랄까, 뻐꾸기소리에는 어딘가 적막의 유전자가 들어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이맘때쯤 뻐꾸기소리가 없다면 초여름의 숲이 아무리 무성해도 무성영화처럼 답답하고 찔레꽃 향기조차 숨 막힐 것이다. 뻐꾸기소리와 찔레꽃은 한 쌍인듯 잘 어울린다. 초여름의 짙어가는 녹음 아래서 찔레꽃 향기를 맡으며 뻐꾸기 소리를 듣노라면, 슬픔도 아픔도 그리움도 한 줄기 아련한 강물이 되어 흘러가곤 한다.

찔레꽃은 우리네 누이들을 닮았다. 보릿고개 막바지에 피는 찔레꽃에는 먼저 간 누이의 냄새와 미소가 들어 있다. 찔레꽃 향기가 너무 슬퍼서 목 놓아 울었다는 소리꾼 장사익에게도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가난의 굴레를 벗기 위해 도시로 나간 우리네 누이들은 가발공장이나 봉제공장의 공순이가 되거나 시내버스 안내양이 되기도 하고 더러는 유흥업소에 팔리기도 했다. 하루 열 몇 시간의 고된 노동의 대가로 받은 몇 푼의 돈을 아끼고 아껴 고향집으로 부치면 그것이 동생들의 학비가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찔레꽃 핀 길을 누나는 떠났네/ 동생들 남들처럼 공부시키겠다고/ 서울로 떠나간 지 석 달 만에/‘좋은데 취직해서 몸성히 잘있단다’/ 적어 보낸 편지에도 소액환에도/ 찔레꽃 냄새가 묻어있었네//중략//고등학교를 마치던 해 어느 봄날,/ 작은 보퉁이 하나로 돌아온 누나는/ 철지난 꽃잎처럼 시들어 갔네/ 기미와 황달로 누렇게 뜬 얼굴에/ 아침마다 새하얗게 분화장을 하고는/ 나를 보고 쓸쓸히 웃어주던 누나// 누나가 묻혀있는 뒷산 언덕엔/ 해마다 오월이면 꿈결처럼 새하얗게/ 분화장한 얼굴로 찔레꽃이 피어/ 흐드러지게 흐드러지게 분냄새를 날리고/ 저승의 기별인 양 적막하게/ 온종일 뻐꾸기가 울고 있었네” - 졸시 ‘찔레꽃’

꽃과 잎에 가려진 가시처럼 아픈 기억은 속으로 감추고, 오늘은 환하게 찔레꽃이 피었다. 활짝 핀 찔레꽃 덤불 가득 벌들이 잉잉거려 한바탕 흥겨운 잔치마당이다. 상다리 휘도록 흐드러지게 차려놓고 바람 편에 사방으로 향기 전단 뿌리고 뻐꾸기 악사가 벌써 흥을 돋우고 있다. 삶이란 한바탕 축제가 아니냐고, 벌 나비 모여들어 무르익은 잔치 마당에 초대를 받고 가서 나도 그득하게 한 상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