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호 <br>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70년대 현대건설이 중동시장을 개척할 때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은 사원조회 때 단골로 하던 말이 있다.

“사나이로 태어나서”라는 군대에서 많이 부르는 노래를 인용하여 “건설, 조선, 자동차 같은 중장대 산업에만 현대는 집중한다. 설탕, 모직 같은 경공업은 삼성에 맡긴다”는 식으로 어떻게 들으면 삼성을 낮게 보는 발언이었다.

필자가 현대건설 사원 시절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던 정 회장의 모습이 생각난다. 사원들과 씨름을 할 정도로 소탈하고 전용 엘리베이터 없이 사원들과 어울렸다.

반면 만난 적은 없지만 삼성 이병철 회장은 소탈한 느낌의 정 회장과 달리 깔끔한 귀족적 인상을 주었다. 삼성의 업종도 힘든 업종 보다는 쉽게 이익을 산출하는 소비자 밀착형 업종이 주를 이루었다. 그 당시에도 회장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다고 들었다.

당시 경영학계에서는 두 그룹의 운영방식을 아주 대조적으로 평가했다.

소위 ‘막 밀어대는 식’의 경영과 ‘치밀한 기획’이 수반되는 경영방식이 대조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두 그룹이 모두 성공적이긴 해도 운영방식은 달랐고 그 원인은 총수의 성격과 그리고 업종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라고 해석되었다. 실제로 현대 정 회장은 공장 후보부지를 헬리콥터를 타고 돌아본 후 장소를 헬리콥터 안에서 정했다는 후문도 있다. 반면 삼성의 이 회장은 이런 경우 치밀하고도 꼼꼼하게 손익계산서를 작성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세상이 바뀌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았다.

약 10년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90년대 초 귀국하여 보니 현대도 현대전자, 반도체 등에 투자하고 삼성은 중공업, 자동차를 만드는 상황이 되었다. 90년대 이후는 사반세기를 사업구분으로 분할되던 현대와 삼성의 역할은 사업분야로는 두 그룹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두 그룹은 다방면에 진출했다.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업무용 차량으로 현대자동차 제네시스 G90(사진)을 이용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고 한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업무 차량으로 현대차를 쓰는 것은 삼성과 현대차의 협력을 강화하는 상징을 보여 준다고 평한다.

이에 발맞추어 이재용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최근 차세대 전기 자동차(EV) 사업 협력을 위해 사상 처음으로 단독 비즈니스 미팅을 했다고 한다. 양 재계 3세대의 랑데부이다. 각 그룹의 두 총수가 비즈니스 목적으로 회동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향후 양사 간 협력이 크게 기대되는 대목이다.

한국재계 1, 2위인 현대 삼성의 협력은 오랫동안의 바람이다. 사실상 일본, 미국에서도 그룹의 협력은 쉽지 않은 현실에서 두 그룹의 협력은 코로나 사태로 경제적 위기를 맡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 시의적절하다.

포카전이나 연고전처럼 현삼전을 매년 하면 어떨까? 뭐 그런 엉뚱한 생각도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