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수령은 북한의 최고 존엄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북한의 3대 수령승계는 봉건 왕조의 세습구조와 같다. 북한 당국은 1956년 8월 최창익·박창옥의 종파 사건 후 김일성 수령의 권위를 절대화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1959년 발간된 ‘항일 빨치산들의 회상기’에는 김일성이 항일 투쟁 시 축지법(縮地法)을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 1970년 북한의 초등교과서 ‘김일성 원수님의 어린 시절’에도 ‘솔방울로 수류탄’을 ‘모래로 쌀’을 만들고 ‘가량 잎 타고 강 건너’는 모습이 나타난다. 수령은 축지법까지 쓰면서 시공을 초월하여 활동한다는 허구이다.

6월 20일 노동신문은 ‘축지법의 비결’에서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 축지법을 이제 쓰지 않겠다.’고 선포하였다. ‘사람이 땅을 주름잡아 다닐 수 없다’고 고백한 것이다. 지난해 하노이 회담 결렬 후 김정은은 ‘수령을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게 된다.’는 발언의 후속 탄이다. 30대 후반의 김정은은 10대 후반 스위스 베른 국제학교에서 2년 유학하였다. 이번 그의 발언은 수령에 대한 상징조작이 이제 과거처럼 먹혀 들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우상화는 정보화 초기 단계인 북한 땅에서 이제 사라질 것인가.

그러나 이번 조치만으로 북한의 수령 우상화는 쉽게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북한 곳곳에 수령의 우상화 정책이 뿌리내려 있기 때문이다. 북한 주요 광장에 세워진 수령 부자의 동상, 주요 명승지 바위마다 새겨진 김일성 어록, 심지어 가정집에도 수령의 사진은 걸려 있다. 평양 곳곳에는 ‘위대한 수령은 우리와 함께 살아계신다’는 표어가 나부낀다. 아직도 수령의 양대 생일 태양절과 광명성절은 국경일이 되어 있다. 하노이 회담 후 김정은의 귀국 행사시 도로변에서 열광하던 시민들의 모습은 여전히 재현되고 있다.

수령 우상화 정책은 아직도 당의 핵심적 지도 이념이 되고 있다. 수령은 인민의 ‘뇌수’이므로 당, 군대, 인민은 수령을 절대 옹위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인민들의 육체적 생명은 부모로부터 받지만 수령과 결합해야 ‘정치 사회적 생명체’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이 ‘어버이 수령님’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북한 주민이 수령을 직접 보는 것은 남한의 기독교 신자가 예수님을 뵙는 것과 같다. 이러한 수령론과 수령 승계론이 폐기되지 않는 한 북한사회의 수령숭배는 계속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축지법은 사라져도 수령의 우상화는 계속될 전망이다. 세계 사회주의 어느 국가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수령론이 유지되는 한 수령 우상화는 계속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의 학자들까지 북한의 세습 왕조체제를 비판하고 있다. 아직도 북한 세습체제까지 옹호하는 주사파들은 시대에 역행하는 군상들이다. 다행히 북한은 이미 초기 시장 경제에 편입되었다. 시장화의 진전에 따라 수령 우상화 정책은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 주민 1/3이 휴대전화를 소지하게 되었다. 정보화 사회 역시 북한의 일인수령제를 거부할 것이다. 북한의 수령제가 폐기 될 때 우상화 현상은 훨씬 약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