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이노센스’

“자 어디로 갈까…. 네트는 광대해”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1995년 영화 ‘공각기동대’에서 인형사와 합체한 쿠사나기 소좌는 의체만을 남긴채 광활한 네트(일종의 네트워크) 속으로 사라진다. 작품 속 2029년의 일이다.

모든 것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회. 인간의 생애는 타고난 육체의 노화와 함께 그 속에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축적되는 정보의 네트워크 접속으로 연명된다. 즉, 죽는 것이 아니라 잠시 사라질 뿐 네트로 사라졌던 정보가 언제 어디서 어떤 의체를 통해 돌아올지 모른다.

부활과 재탄생이 아닌 등장과 퇴장의 삶(?)을 반복하는 세상. 전세계 각국의 정보망을 오가며 주가조작, 정보조작, 정치공작과 테러 등을 일삼던 해커 ‘인형사’를 제거하기 위해 임무에 뛰어들었던 공안9과 ‘공각기동대’의 사이보그 쿠사나기는 인형사와 합체 후 광대한 네트 속으로 ‘퇴장’해 버린다.

일부러 공각기동대에 체포된 인형사는 “하나의 생명체로서 정치적 망명을 요청한다”고 말한다. 무엇이 그를 생명체로 규정할 수 있으며, 경계없는 네트의 세상 속에서 정치적 망명은 어떻게 규정되어 질 수 있는가. 근원을 알 수 없는 정보의 바다에서 생성된 정보의 집합체를 ‘생명체’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2029년 쿠사나기 소좌의 퇴은 존재에 대한 물음과 생명체의 규정이라는 의문을 남긴채 끝을 맺었다.

쿠사나기가 퇴장한 2032년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영화 ‘이노센스’에서 형사 바토(대부분의 신체를 기계화한 사이보그)는 온전한 인간(?)인 도그사와 파트너를 이뤄 공안 9과에서 각종 사이버 테러와 로봇과 관련한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신체의 대부분을 기계화한 바토가 인간이라는 증거는 뇌의 일부분과 3년 전 네트 속으로 사라진 쿠사나기에 대한 기억뿐이다.

바토에게 고스트(영혼)가 없는 인형(로봇)이 주인을 살해하는 사건이 배당되고, 인형은 “도와줘요, 도와줘요”라고 속삭이다가 자살을 택한다. 인형의 ‘자살’은 극한에 몰린 인간의 최종 의지의 표현이라는 생각에 충격을 던진다. ‘공각기동대’에서 질문을 던지고 끝을 맺었던 영화는 ‘이노센스’에서 또 다른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그 질문들이 향하는 곳은 한 지점이다. 가까운 미래,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정보’와 ‘영혼’ ‘기억’의 경계가 무너지는 지점에 탄생하게될 ‘존재’를 어떻게 규정지을 것이며, 삶과 죽음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나는 나의 의지로 쌓아 올린 정보의 온전한 상태인가, 아니면 어느 순간 조작되고 오염된 정보를 나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인간의 희미한 기억만을 간직한 사이보그 쿠사나기와 바토는 각각 두 편의 영화에서 최종적인 ‘선택’과 ‘결정’의 순간에 다다른다. 퇴장할 것인가 남을 것인가, 퇴장 후 다시 등장할 것인가. 쿠사나기가 퇴장 후 무대에 남은 바토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말처럼 “인간이라는 존재를 묻는, 지옥 순례의 여행에 나서는 인물”이 되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의 무대에 서게 된다.

바토의 여정을 담은 ‘이노센스’는 ‘공각기동대’보다 화려하고 풍성하며 친절해졌다. ‘공각기동대’의 차갑고 냉정했던 분위기는 ‘이노센스’에서 ‘상실’과 퇴장하지 못한 자의 ‘쓸쓸함’이라는 감정을 담아 전개된다. 친절이라고 하지만 전작에 비해 ‘다소’일뿐 전개와 그 속에 담긴 질문들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바토, 잊지마! 당신이 네트에 접속할 때마다 내가 반드시 당신 곁에 있다는 걸” 잠시 의체를 빌려 등장했던 쿠사나기가 다시 퇴장하며 던진 말이다. ‘다소’ 위안과 상실을 지울 수는 있겠지만 전편에서부터 계속해서 이어졌던 질문으로 향하는 직접적인 열쇠가 되지 못한다. 여전히 ‘지옥의 순례’는 퇴장하지 못하고 남은 자의 몫이고, 그 순례의 여정에 ‘그리움’만 더해질 뿐이다.

인간의 뇌에 담긴 정보를 디지털화해 컴퓨터 저장파일처럼 다룰 수 있을 때, 영화처럼 ‘전뇌화 기술’을 통해 고스트의 과정이 가능한 시대,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리’울지 모른다. 내 안에 있는 이가, 나를 흔드는 누군가가 그대인지, 0과 1의 신호일 뿐인지. 퇴장하지 못한 이의 질문이 가득한 쓸쓸한 생이다.

*영화 ‘이노센스’는 네이버와 구글플레이, IPTV에서 감상할 수 있다.

/문화기획사 엔진42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