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구 하

참꽃 피었다

병풍산 오르다 터진 바위틈 햇살에 몸을 맡긴 채 꽃이 된

화사(花蛇)를 본다 꽃다발을 이루는 무리, 손에 든 붉은 꽃잎 삽시간에 척척 널브러지고, 열꽃 앓는 여자는 시퍼렇게 운다

봄 언덕 빈집 한 채 아직도 덜컹덜컹 낡은 문짝이 있다 가파른 어지럼증이 있다 뿌리내리지 못하는 황사 바람 너머 어둡고 축축한 방, 한 줌의 고요가 마당을 휘저으며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용을 써 도망쳐도 제자리, 숨이 멎는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다

달뜬 몸 둥글게 말고 누운

잠과 잠 사이

참꽃 덤불 아스라이 걸려 있다

개화의 경이로운 순간을 시인은 어지럼증, 화사(花蛇), 열꽃 앓는 여자로 표현하면서 새로운 세계와 영역의 분출과 확장의 순간을 시인 특유의 필치로 표현하고 있다. 그 반면에 낡은 문짝이 있는 봄 언덕의 빈집에 가득찬 어둠과 적막함을 그려내고 있음을 본다. 이러한 상반된 봄 풍경에 대해 서로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는 풍경을 그려내는 시안이 깊고 밝음을 느낄 수 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