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열 한동대 교수
장규열 한동대 교수

삼십 년을 훌쩍 넘겼다. 달달하게 찾아왔던 사랑을 지키기로 마음먹고 함께 건너온 세월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만나고 헤어진 수많은 얼굴들 가운데 아직도 곁을 지키고 있는 우리는 어쩐 일일까. 셀 수도 없을 이야기들 가운데 늘 등장하는 당신은 내게 누구란 말인가. 살을 맞대고 살아도 속속들이 다 안다고 할 수도 없는 당신은 누구인가. 사람이 생겨난 것도 신기한 일이지만 생각할수록 오묘한 것이 부부라는 이름의 관계가 아닐까. 아이들까지 있고 보면 둘이서 만들어온 세계가 신통하기도 하다. 울고 웃으며 놀라고 분도 내지만, 얽히고설킨 사연들 가운데 만들어온 시간의 흔적은 부인할 방법이 없다. 내 탓이고 당신 덕이며 함께 걸어온 발자취에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만 한가득이다.

둘이서 이루지만 하나인 듯 살아야 하는 게 부부라고 한다. 부부의날이 21일인 것도 둘이서 하나를 만들라는 뜻이라는데,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박자가 맞기는커녕 갈수록 엇나가기만 하는 당신과 내가 아닌가. 솔직히 하나가 되는 일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게 아니었을까. 차라리 끝내 하나는 안 될 것이니 참고 견디며 살아가겠노라는 소박한 다짐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싶다. 적당히 포기하고 이제는 거울 앞에 돌아와 선 심정이 되어 체념하고 그냥 일상을 대하는 게 낫지 않을까. 공연히 부딪히지 않고 쓸데없이 간섭하지 말며 남도 아니지만 하나도 아닌 듯 그렇게 그렇게 지내는 게 서로에게 이롭지 않을까. 다치지 말고 침범하지 말고. 사랑은 아예 꺼버리고 관심도 전혀 주지 않으며 한 울타리에 사는 당신과 나는 부부인가 아닌가.

‘부부’인 까닭은 그럼 무엇이란 말인가. 아이들 탓에 억지로 산다는 건 그거야말로 억지가 아닌가. 이왕 함께 사는 김에 뭐라도 만들어가는 시간이어야 하지 않을까. 뜨거운 사랑이 아니라도 끈끈한 감정이 있지 않은가. 넘치는 열정이 식었는지 몰라도 끊임없이 샘솟는 호기심이 있지 않은가. 치열한 질투는 혹 잊었어도 잔잔히 흐르는 관심이 거기 있지 않는가. 핏대어린 싸움을 이제는 못하겠지만, 호수같이 너른 마음에 담지못할 미움도 이제는 없다. 부부가 되어 함께 바라보며 불쌍히 여길 세상이 저기 있지 않은가. 부부가 되어 마음모아 일으켜 세울 다음 세대가 거기 있지 않은가. 뜨겁게 만났을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정겹게 나누어줄 넓은 아량이 이제는 생겨야 하지 않을까. 서로를 바라보기 보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마음이 되어.

부부의날에 한 번씩 돌아보았으면 한다. 남편이 되고 아내가 되어 이제 서로에게 무엇을 선사할 것인지 새겨보았으면 싶다. 받으려고만 하며 살아오지 않았는지, 나누기에는 인색하지 않았는지. 당신의 목소리를 이제는 들어주는 내가 될 수는 없겠는지. 세상에 완벽한 당신은 어디에도 없었음을 어째서 애써 부인하며 살았는지. 어차피 부족하여 늘 도우며 살아야 했음을 왜 이제야 깨닫는지. 격려하고 북돋우며 응원하고 일으키는 당신이 되고 부부가 되시길. 부부의날,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