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기자가 만난 경북 사람
마흔여덟에 첫 소설집 출간한 내과 의사 김강

지난달 소설집을 출간하고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내과 의사 김강 씨.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지난달 소설집을 출간하고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내과 의사 김강 씨.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소설을 쓴다는 건 허구의 문장을 수단으로 세계와 인간의 진실을 탐구하는 행위다.

소설가가 꼭 똑똑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건 소설가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덕목이 아닐까. 고민 없이 해결되는 문제는 없고, 진실은 고민의 시간을 통해 찾아지는 것이므로.

소설가가 인간의 소프트웨어라 할 정신 영역을 심화·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면, 의사는 하드웨어라 부를 수 있는 육체의 안정적 보존과 효과적인 치유를 담당하고 있다. 둘 다 쉽지 않은 일이다.
 

법 공부하다 27세에 의대생으로 진로 바꿔
마흔 가까워 내과 전문의로 대학병원 조교수 시작
2016년 포항에 정착, 동업으로 내과 운영해 와
45세에 습작 시작… 3개월만에 문학상 수상 ‘행운’
“마음과 귀 열어 환자 이야기 듣는 따스한 의사
일상 벗어난 큰 주제의 글 쓰는 소설가로 남고파”

여기 내과 의사와 소설가의 삶을 동시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 최근 첫 번째 소설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을 펴낸 김강(48)씨.

1990년대에 청춘 시절을 보낸 김씨는 그 시기를 함께 살았던 수많은 또래들처럼 세계와 인간에 대해 나름의 깊은 고민을 했다. 방황의 시간도 길었다.

그러나, 30여 년 전 품었던 문제의식은 중년에 들어서도 사라지지 않았고, 그걸 어떤 방식으로든 풀어내고 싶었다. 그게 김강 씨가 바쁜 의사 생활 가운데서도 시간을 할애해 소설을 썼던 이유다. 열정은 물론, 뒤따르는 노력 없이는 어려운 일이었을 터.

김씨는 남다른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20대 중반까지는 법학을 공부했고, 스물일곱에 의대 신입생이 됐으며, 마흔에 가까워서야 내과 전문의가 됐다. 그리고, 마흔여덟엔 ‘자신의 책을 낸 소설가’라는 이름표까지 얻었다. 독자들이 그의 삶에 궁금증을 가질만하다.

“의사 일과 소설가로서의 역할 두 가지 모두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김강 씨를 초여름 기운이 완연했던 지난 수요일 본사 편집국에서 만났다. 그는 무엇을 꿈꾸며 어떻게 살아왔을까? 아래는 그 의문에 대한 답변이다.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1972년 바다가 지척인 부산 대연동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산대 법학과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경주 동국대 의대에 입학해 공부했다. 서른셋에 결혼했고,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둘 있다.

-현재 의사이자 소설가다. 중고교 시절은 어떤 학생이었는지.

△무엇이 되겠다는 목표가 뚜렷한 아이는 아니었다.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글을 쓰는 건 좋아했다. 생각하는 걸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고, 그 방식을 찾았던 것 같다.

부모님 기억 속에선 모범생인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게 뛰어난 성적도 아니었다. 공부를 썩 잘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분야에서 눈에 띌 만큼 뛰어나지도 않았다. 다만 중학교 때까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피아노 연주를 즐겼다. 고등학교 땐 시 비슷한 걸 쓰곤 했는데, 비슷한 취미를 가진 친구들과 함께 동인지를 한 권 냈던 기억이 난다.

-고교 졸업 후 법대에 입학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아버지의 권유였다. 당시엔 말 잘 듣는 학생이었다.(웃음) 적지 않은 수험생들이 부모의 뜻에 따라 학과를 선택하곤 하던 시대였다. 입학은 했는데 사법시험이나 공무원 시험에는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그저 세상과 인간에 대한 고민, 이를테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지향하며,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1990년대 초반엔 나 말고도 그런 학생들이 많았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보다는 세상에 대한 고민과 번민의 시간이 길었다. 무얼 알고 삶의 방식을 모색했다기보다는 정확한 지향이 없으니, 그저 이리저리 휩쓸려 다닌 듯도 하다. 그 시기를 미화하지도 부정하지도 않고 싶다. 그때 보낸 시간을 통해 현재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얻었고, 또한 인간에게 전혀 의미 없는 시간이란 없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환자와 면담하는 김강 씨.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환자와 면담하는 김강 씨.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의대에 입학한 건 언제이고, 그 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스물일곱 살 때다. 학력고사가 아닌 수학능력시험을 보고 입학했다. 학력고사와는 달리 논리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정답을 찾는 게 비교적 수월한 시험이다. 의대에 간 이유는… 20대 초반에 부모님께 걱정을 많이 끼쳤다. 자식으로서 한 번이라도 효도란 걸 해 보고 싶었다. 함께 입학한 동기들과는 적지 않게 나이 차이가 났는데, 그런 게 크게 문제 되지는 않았다. IMF 즈음이라 나 외에도 나이 먹은 의대 신입생들이 적지 않았다.

-인턴과 레지던트 등 수련의 시절은 군대 같은 분위기라고 하던데.

△나이대접도 조금은 받은 것 같고… 대부분 학년 단위로 움직이니 선배들과 크게 불화할 일은 없었다. 나이 먹은 티를 내지 않으려고 스스로 노력도 했다. 야구 동아리에서 활동했는데, 거기서도 후배들과 격의 없이 어울렸지 권위적으로 굴지 않았다. 내 느낌만일 수도 있으나 레지던트가 됐을 때 선배들이 나를 자기 후배로 뽑아가는 걸 싫어하지는 않은 것 같다.

-전문의가 된 건 몇 살 때인가.

△의대 6년 과정과 인턴, 레지던트까지 거치고 내과 전문의가 됐을 때 서른여덟이었다. 이후 동국대 경주병원에서 일하며 조교수로 생활했다. 거길 그만두고 마흔한 살에 포항으로 와서 몇몇 선배들과 병원을 했다. 2016년부터는 양덕동에서 한 선배와 동업으로 내과를 운영하고 있다. 직원이 13명인 크지도 작지도 않은 병원이다.

-소설 이야기를 좀 해보자. 의사 일이 바쁠 텐데 언제 습작을 했나.

△3년 전부터다. 그 이전엔 소설을 한 번도 써보지 못했다. 내 경우 한 가지 일에 열정을 기울이면 거기에 몰두하는 편이다. 평일엔 의사로 일하고, 술도 마시고,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주말엔 자리 잡고 앉아 소설 쓰기에만 몰두했다. 처음 1년 동안은 한 달에 한 편 이상 습작을 했다. 마흔다섯 살에 습작을 시작했고, 그해 등단했으니 다른 작가들보다 운이 좋은 편이다. 주말 내내 책상에 앉아있는 날 이해해준 아내와 아이들이 고맙다.

-2017년 심훈문학상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왔다. 주위의 반응은.

△소설을 쓰기 시작한지 3개월 만에 상을 받았다. 아버지와 아내가 특히 좋아했다. 취미로 하는 글쓰기가 아니란 걸 인정받았다는 의미도 컸다. 동료 의사들은 ‘대단하다’ ‘언제 소설을 다 썼냐’라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반응을 보였다.(웃음) 아직은 세상에 내보이지 않았지만, 내가 가장 먼저 썼던 습작이 1990년대 나와 친구들의 이야기다.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그 스토리를 소설이란 방식으로 풀어내고 나니 다음 작품들이 생각보다 쉽게 이어졌다. 짧은 습작 기간에 30편쯤을 쓸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싶다.

-사숙하거나 영향 받은 작가가 있는지.

△다소 오만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내가 쓸 수 있는 걸 써야지 누구와 비슷하게 쓰고 싶지는 않다. 집 거실과 병원 진료실에 막심 고리키(러시아의 작가·1868~1936)의 사진을 걸어놓고 있다. 냉소적인 동시에 진중해 보이는 그의 눈빛을 보며 소설가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포항문예아카데미와 포항도서관에서 진행된 글쓰기 프로그램은 문장을 만들어 다듬고, 소설의 얼개를 짜는 방법을 익히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얼마 전 첫 소설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이 나왔다. 어떤 기분이 들었나.

△출간 전에는 설레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책을 받아드니 허탈한 마음도 들었다. 아주 좋을 줄 알았는데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부담감도 없지 않았다. 다만 ‘이제 나는 습작생이 아닌 작가다’라는 의식은 생겼다. 보잘것없는 내 습작들의 첫 번째 독자가 돼준 부모님과 아내에게 특별한 감사를 전하고 싶었다.

-이번 책을 통해 다루고자 했던 주제는 뭔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갖가지 감정, 우리가 아직까지 풀지 못한 세계의 본질적 모순들, 차별이나 폭력 같은 주제에 관심이 있다. 책에 수록된 소설 대부분이 가까운 미래를 시간적 배경으로 한다. ‘우리 곁에 엄존함에도 쉽게 건드리지 못한 인간적 문제와 모순이 그때는 해결될 수 있을까’란 의문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했다.

-앞으론 어떤 의사, 어떤 소설가를 꿈꾸는지.

△처음 의대에 갔을 땐 목적의식이 없었다. 내 경우엔 환자를 돌보게 되면서 차츰 소명의식이 생겼다. 마음과 귀를 열어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따스한 의사가 되고 싶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소설가로선 일상에만 천착하지 않고, 조금은 큰 주제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작품들을 심화시켜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도 독자들에게 던지며. 또한 잘 쓰지는 못해도 열심히, 꾸준히 쓰겠다는 약속은 할 수 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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