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은 봉

머릿속 지푸라기로 가득 차오르는 하루다

밥 짓기 싫어

라면 끓여 저녁 끼니 때운다

라면에는 신김치가 제격이다

생수병 들어 꿀꺽꿀꺽 물 마신 뒤

소매깃 깃으로 쓰윽, 입 닦는다

담배 한 대 피워 문 채

베란다로 나간다 멍한 마음으로

아래쪽 화단 내려다본다

샛노랗게 지저귀고 있는

개나리꽃들 사이로

철 늦은 매화 몇 송이 뽀얗게 벙글고 있다

저것들은 좋겠다 외롭지 않겠다

쉰의 나이를 넘기고서도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은

무언가 크고 높고 귀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지푸라기로 가득 찬 머릿속

디룩디룩 굴려본다 사랑은 본래

차고 시고 아리게 크는 법

시인이 말하는 라면도 신김치도, 생수병도, 입을 닦는 소매깃도, 개나리꽃들도 특별히 높고 귀한 존재로서의 가치 영역이 넓지 않다. 그저 누추한 삶 혹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데 동원되는 물질들이다. 그러나 시인은 추레한 현실이지만 꼭 필요한,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진정으로 크고 높고 귀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생을 관조하는 시안이 깊고 그윽하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