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육·해·공군 전력이 참여해 경북 울진 죽변 해상에서 실시할 예정이었던 합동 화력훈련이 다음 달로 연기됐다. ‘기상 상황 때문’이라는 것이 군 당국의 설명이지만 일각에서 북한 눈치 보기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최근 GP총격 사건에서 보듯이 우리 군에 나타나는 현상은 정치 권력의 ‘평화’ 논리에 상당히 순치된 모습이다. 정권의 방향에 적응해야 하는 군의 처지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못내 걱정을 떨치지 못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북한이 동해상에서 무력 도발을 일으킨 상황을 가정한 이번 훈련은 육군의 다연장로켓(MLRS) 천무, 아파치헬기, 해군의 P-3 해상초계기, 공군의 FA-50 전투기 등이 동원돼 표적 확인 및 도발 원점 타격 등 내용으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상 사격훈련을 죽변 해안에서 하게 된 것은 군사분계선(MDL) 일대 사격훈련을 중지하도록 한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른 것이다.

군은 지난 13일 북한군의 최전방 감시초소(GP) 총격사건 조사 결과 K-6 기관총의 공이(탄환 뇌관 격발장치) 파손 등 일부 미비점이 있었으나 전반적 대응 절차엔 문제가 없었다고 발표했다. 최전방 부대의 주요 화기가 부서진 채 방치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것도 문제지만 정말 심각한 것은 군이 이번 사건을 ‘우발적 오발’로 속단해 의혹과 논란을 자초했다는 사실이다. 군 안팎에서도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남북대화의 모멘텀을 회복시키려는 정부·여당의 ‘평화 구축’이라는 정치적 목표에 발맞추려는 것은 양해할 만한 대목이긴 하다. 그러나 국방의 유연성이란 한계가 분명해야 한다. 국민의 안위를 확보하면서 영토를 굳건히 수호해야 할 엄중한 사명을 지닌 군이 전선에서 자꾸만 후퇴하고 굴종하는 것으로 비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의 도발을 ‘우발적 사고’로 예단하고 어물어물 군사훈련마저 거듭 미루는 모습은 국민 불안을 부를 따름이다. ‘평화’ 논리에 취한 군대가 국방을 튼튼하게 하는 게 아니라 튼튼한 국방이 ‘평화’를 담보한다는 평범한 진리와 너무나 동떨어진 모습에 걱정만 쌓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