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정치권이나 정치 논객들이 종종 써먹는 비판 용어 중에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라는 비유가 있다. 용비어천가는 원래 조선 세종 때 선조인 목조(穆祖)에서 태종(太宗)에 이르는 6대의 행적을 노래한 서사시다. 정치 이야기에서 이 말은 어떤 정당이나 정치인이 특정 실세 보스를 향해 비판의식을 거세하고 과장된 수사법으로 칭송만 일컫는 현상을 비꼬기 위해서 주로 동원된다.

지난 4·15총선 결과와 관련해 여당의 대승을 진작 예견했다는 반응이 없지는 않지만, 뜻밖이라는 표정도 상당수다. 야당을 지지했던 사람들 가운데는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라는 표현까지 쓰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라는 탄식이 많다. 그 정서를 타고 일부의 메아리 없는 ‘부정선거’ 주장은 좀처럼 식을 줄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개헌선에 육박하는 숫자의 거대한 ‘범여권’ 의석을 당당히 거느리게 됐음은 역연하다.

느닷없이, 여당 정치권에서 듣기 민망한 문비어천가(文飛御天歌)가 잇따르고 있다. 강원도지사에서 영어(囹圄)의 신세로 전락했다가 와신상담 끝에 국회로 돌아온 민주당 이광재 당선자가 시작했다. 그는 노무현재단의 유튜브 특별방송에서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은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 새롭게 과제를 만드는 태종 같다”며 “이제 세종의 시대가 올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며칠 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3년 동안 태종의 모습이 있었다면 남은 2년은 세종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것이 참모로서의 바람”이라고 고쳐 말했다. 이광재 당선인이 문재인 대통령을 노 전 대통령에게 ‘끼워팔기’하듯 표현한 일이 못마땅했던 것일까, 그는 문 대통령에게 ‘태종+세종’ 이미지의 화려한 포장지를 붙였다.

정세균 총리까지 칭송대열에 동참했다. 정 총리는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 3년은 대통령님의 위기극복 리더십이 빛난 시기”라고 찬사를 띄웠다. 이쯤 되면 정부·여당 내의 작금 분위기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총선 압승 결과를 만들어낸 최대의 공신으로 불가사의한 지지율 고공행진을 일궈낸 문재인 대통령이 꼽히는 분석은 부인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 시혜를 풍성히 받아든 여권 인사들이 감탄을 외치고 싶은 마음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태종+세종’은 너무 심했다. 왕권강화로 조선의 기틀을 세운 태종과 백성을 사랑한 불세출의 군주 세종을 함께 묶어 붙이는 찬송가는 좀처럼 소화하기 버겁다. “나라가 조선 시대로 돌아간 듯하다”는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의 촌평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민주주의가 만개한 나라에서 왜 하필이면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던 봉건시대 군주들의 이름을 줄줄이 소환하는지 께름칙하다. 총선 대승이 아무리 흥겹더라도 꼭 기억해야 할 덕목은 있다. 내리막길에 정말 필요한 것은 액셀러레이터가 아니라 브레이크라는 교훈을 아주 망각하지는 말기를 부탁한다. ‘태종·세종’이 왜 거기서 나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