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는 우리로 하여금 삶에 대한, 정치와 경제에 대한 감각과 정서를 뒤흔들어 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세계 상황’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져다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을 나는 한 마디로 말해 ‘포스트, 포스트콜로니얼’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포스트콜로니얼’이란 ‘탈식민’을 말하는 것이니, 이는 우리가 1945년 8·15 이후 겪어와야 했던 역사적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동안 우리는 일제에 의해 훼손된 우리말을 회복해야 했고, 문화와 전통을 되살려내야 했고, 대일 청구권을 확실히 행사할 수 있어야 했고, 또 일제 말기 강제 동원 노역을 당한 사람들,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간 여성들의 대가를 받아내야 했다.

코로나19는 그러나 제국과 식민지의 변함없는 우열체계라는 모델을 무너뜨리고 있다. 그러니까 일본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허상과 달리 낡았고 무기력했고 뒤져 있었다. 우리는 새롭고 민첩했고 앞서 나가고 있었다. BTS가, ‘기생충’이, 반도체가 앞서 가듯이 방역체계도, 의료보험도, 위기에 대처하는 시민의식도 우리가 ‘앞서’ 있었다.

이런 때에 이용수 할머니가 ‘정의기억연대’를 향해 어떤 매서운 일갈을 하고 나왔다. 그는 말했다. 그 돈 다 어디 갔느냐고. 그리고 지난 30년 투쟁은 증오를 키우는 투쟁이었지 않느냐고. 연이어 구차한 변명들이 줄을 잇고 심지어는 자녀 유학 비용까지 들추자 하고 고발까지 서슴지 않는 사태가 이어진다.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하나? 나는 포스트 포스트콜로니얼을 생각한다. 자신은 죄 지은 적 없다 발뺌으로 일관하는 범죄자를 향해 돈으로 죄값음을 하라는 방식이 이제까지 해법이었다면, 새로운 해법은 이런 것이다. 당신들의 범죄를 부인으로 일관하고 근본적 책임을 지지 않겠다면, 좋다. 당신들은 영원히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은폐하고자 하는 범인들로 남으라. 우리의 딸들, 우리의 할머니들은 이제 당신들보다 나은 국가를, 사회를 만들어가는 우리들이 보살피련다.

‘정의기억연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백’하기 바란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우리의 포스트콜로니얼을 내려놓고 포스트 포스트콜로니얼을 향해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우리가 즉각 식민지의 기억을 끊어버려야 한다. 아베와 그의 부끄러움 모르는 일본인들과 이 나라의 괴상한 동조자들을 저 어두운 과거 속에 묻고 역사의 새 장을 열어젖혀야 한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