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래<br /><br />시조시인<br /><br />
김병래

시조시인
 

인류도 원시시대에는 다른 동물들처럼 생존에 필요한 정보나 기술을 가족으로부터 배웠을 것이다. 사회의 규모가 커지고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학습해야 할 정보와 기술이 많고 다양해서 학교와 교사가 필요해졌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세상은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다단하고 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도 그만큼 폭증하고 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과외나 학원의 수업까지 필수가 될 정도로 태교에서부터 유치원, 초, 중. 고등학교에 이르는 입시를 위한 교육에다 대학을 나오고도 취업을 위한 공부를 또 해야 하는 게 대다수 청년들의 실태이다. 오로지 입신출세를 위한 교육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을 모두 쏟아 부어야 한다는 게 이 시대의 일반적인 생존방식인 셈이다. 가장도 꽃다운 시절을 몽땅 그럴싸한 직장을 얻기 위해 바쳐야 한다는 건 너무 억울하고 부당한 일이 아닌가.

문명과 야만의 차이는 교육에 있다. 갓난아이를 늑대가 키워서 늑대와 비슷한 행동을 했다는 늑대소년의 일화처럼,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사람으로 길러지는 것이다. 온정이 있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맞는 구성원을 길러내는 교육이 필요하다. 오늘의 교육 현장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학생들의 인권을 강조한 나머지 교사들의 교권이 훼손되는 부작용을 가져온 것이 그 하나다. 교육이란 당시 사회에 적당한 구성원이 되도록 다듬고 가꾸어가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좋은 열매를 맺는 과실나무가 되게 하려면 물과 거름을 제때에 공급하는 것 못지않게 가지를 치고 적과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제 맘대로 가지 뻗고 열매 맺도록 놓아두어서 바람직한 결실을 기대할 수 없듯이 개성도 좋고 인권도 좋지만 질서와 규칙을 따르도록 적절한 규제를 하는 것이 교육의 기본이다. 학생이 교사의 지도에 잘 따르지 않고 교권이 존중되지 않아서야 어떻게 바람직한 교육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입시나 경쟁을 위주로 하는 교육은 반쪽짜리 교육에 불과하다. 교사는 지식이나 기술의 전달자이고 학교는 단지 입시나 취업을 위한 교습소 역할을 할 뿐이라면 인격의 함양이라는 교육의 또 다른 부분은 실종이 되고 만다. 비인부전(非人不傳)이란 말이 있듯이 지식과 기술의 습득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 규칙과 질서를 지키고 남을 배려하는 사회성을 학습하는 일이다. 상당한 부와 권력과 학벌을 가졌으면서도 도덕성이나 준법정신은 뒷골목 잡배들 수준인 인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자들이 득세하고 행세하는 세상이 정의로운 세상일 수는 없는 것이고 그것은 참된 교육이 목표로 하는 세상도 아니다.

교사들의 사고나 언행은 성장기의 학생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특히나 섣부른 이념에 경도되어 편향된 이념을 주입하려는 교수와 교사들이 적지 않은 현실도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교과서에까지 버젓이 왜곡되고 편향된 역사를 기술하고 있지 않는가.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한다. 균형 잡힌 사고와 인격을 가진 스승이 없는, 올바른 교육이 부재한 나라는 미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