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를 지나다 트럭 행상을 만났습니다. 한 차 그득 쌓아놓고 파는 것도 놀라운데, 그 내용물이 한라봉이라는 데서 더욱 놀랍니다. 감귤이 흔해진 지는 오래지만 업그레이드 된 파생 종류마저 흔하디흔한 세상이 올 줄 몰랐습니다. 한 컷 담겠다는 양해를 구하며 신기해하자, 사장님 왈, 제주 농장과 직거래하기 때문에 신선한 상태로 박리다매가 가능하다나요.

제가 귤을 처음 본 것은 1974년 겨울 무렵이었어요. 삼촌이 귀향길에 사온 것이지요. 깡촌 아이였던 제게 귤이란 어린이 잡지책 광고에서나 볼 수 있는 상상의 과일이었지요. 주황빛 부드러운 껍질을 벗겨내자 촘촘하게 박힌 과육이 보이고, 그것을 가르면 초승달 모양의 여러 조각이 되는 거예요. 모양부터 이국적이라 경이로웠지요. 조심스레 한 조각 베어 물면 입안으로 퍼지는 달콤함도 잠시, 목구멍을 적시는 새콤함에 온몸이 저릿해졌습니다. 천상의 맛이 따로 없었지요. 귤 종류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제게 그건 어디까지나 귤이 흔해지고 난 뒤의 일입니다. 바나나 같은 건 구경도 못할 시절에 귤은 그 첫맛만으로 어린 입맛을 사로잡았더랬지요.

귤의 첫맛이 입맛의 로망을 실현시킨 보편적인 예라면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할 거예요. 기대한 맛을 충족시킨 추억이 아련함에서 그친다면 실망한 맛을 남긴 추억은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거지요.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는 요즘, 틈날 때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을 찾아서 봅니다. 판타지가 아니라 지난날에 기대는 몇몇 작품은 제가 지나온 시절들과 아주 닮아 있어요.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추억은 방울방울’을 보는데 눈물이 핑 돌다가 곧장 웃음이 터지는 거예요. 파인애플 첫맛에 관한 시퀀스 덕분이지 뭡니까.

가족 온천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5학년 타에코는 보기에도 요상한 파인애플을 보고 졸라서 사게 됩니다. 하지만 식구들은 먹는 방법을 모릅니다. 다음날 큰언니가 배워온 방법대로 엄마는 중간을 잘라 박힌 심을 발라냅니다. 피자조각 같은 노란 파인애플 속살이 드러나고, 할머니를 비롯한 모인 식구들 눈동자가 일제히 파인애플 위에 동그랗게 꽂힙니다. 찰나의 긴장된 침묵이 끝나고 식구들은 저마다 한 조각씩 베어 뭅니다. 천상의 맛을 기대했건만, 그날 파인애플 맛의 진실은 썰어놓은 무맛만도 못합니다. 먹기를 포기한 채, 애써 외면하는 식구들의 눈치를 보면서 타에코는 꾸역꾸역 파인애플 조각을 입안으로 밀어 넣습니다. 역시 과일의 왕은 바나나야, 이런 혼잣말을 내뱉어보지만 위로가 될 리 없습니다. 어린 타에코와 제가 다른 점이 있었다면 그때까지도 저는 바나나를 구경한 적이 없었다는 거예요.

김살로메소설가
김살로메
소설가

비슷한 기억 하나를 소환하지요. 도회로 이사 온 후, 입주 과외를 하던 오빠가 첫 월급을 타서 과일을 사온 적이 있어요. 백화점에서 파는 과일 바구니 속, 구색 맞춰 담기는 것 중 하나라는 것만 알았을 뿐, 이름도 속도 모르는 과일이었어요. 거친 박처럼 생긴 그것을, 타에코네가 그랬듯이 우리 식구들 역시 먹는 법을 알 리 없었지요. 일차로 엄마가 과도로 자르기를 시도했습니다. 칼끝이 끄떡도 하지 않았지요. 첫 귤을 먹던 그때가 떠올라 저는 자꾸만 목구멍으로 침을 삼켜야만 했어요. 생채기로 얼룩진 채 끄떡도 않던 그 요물은 오빠가 식칼을 들고 힘자랑을 한 뒤에야 실체를 드러냈어요. 어슷하게 잘린 과일 머리 사이로 오줌 줄기 같은 물이 흘러내립니다. 식구들 눈빛은 적잖이 당황하고, 새콤달콤한 과육을 기대했던 저는 실망감에 주저앉고 맙니다. 무맛보다 못한 음료 한 잔, 그게 그날 얻은 수확의 전부였습니다. 한참 뒤에야 그것이 야자열매인 코코넛이란 걸 알게 되었지요.

확실히 첫맛은 환희에 찬 ‘새콤달콤’보다는 실망으로 소침해진 ‘텁텁밍밍함’이어야 해요. 달콤한 첫맛은 너무 당연한 기억이라 우리의 정서에서 소환될 기회가 후자보다는 못해요. 마치 귤 맛에 익숙해진 제가 더 이상 그것에 미련을 두지 않는 것처럼요. 기대했던 첫맛에 아려본 적 있을수록 삶의 소환장에 기록될 확률이 높아요. 때 이른 계절의 파인애플 맛을 만나거나 전혀 엉뚱한 코코넛 내용물의 실체를 알아챌 때, 우리 삶은 풍성해지고 공감 지수가 높아지니까요. 예견된 미감이나 충족된 호기심보다 실패한 환희나 실망했던 기대감이 더 나은 재산이 되는 셈이지요. 기상천외의 짠함으로 버무린 웃거나 울게 하는 온당한 좌절, 누가 뭐래도 그건 그 자체로 진실 된 에피소드가 되는 거예요. 아주 오래된 그 첫맛은 마법의 주문이 되어 누군가를 독려하고 진작시키는 힘이 되니까요. 과일에서 사랑까지, 첫맛이라면 다소 텁텁하거나 호되어도 나쁘지 않아요. 적당히 무너져줘도 괜찮은 거예요.

각설하고, 그대들의 첫맛은 안녕하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