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이재현
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붉은 색 ‘상(賞)’자가 찍힌 띠종이를 두른 국어사전과 꽃묶음을 가슴에 안고 사진 찍던 모습은 1970년대 초등학교 졸업식의 일상적 풍경이었다. 사전을 졸업선물이나 상품으로 주는 경우를 요즘도 드물게 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국어사전 선물은 ‘라떼는 말이야’의 이야깃거리이다.

사전은 지식과 상식의 총합체이자 축약체이다. 백과사전은 말할 것도 없고 낱말 뜻을 풀이해놓은 국어사전만 떠들쳐 봐도 웬만한 지식을 얻을 수 있고 비상식적 수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난 4월 연구실 이사를 하면서 천여 권의 책을 버릴 때, 각종 사전은 한 권도 버리지 못했다. 한 때는 베개보다 두껍고 웬만한 보도블록보다 크고 무겁고 딱딱한 사전들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연구를 하고 강의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굳이 책장에서 힘들여 사전을 꺼내고 펼쳐서 단어를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 몇 번만 두드리면 눈 깜짝할 사이에 단어 뜻이 주르르 펼쳐진다. 아니, 컴퓨터 앞에 앉는 수고조차 귀찮다면 있는 자리에서 손가락만 까딱해도 된다. 그런 데도 우리들은 잘 모르는 말이 있어도 대충 넘어간다. 듣고 읽는 것이야 그렇다 쳐도 말하고 쓰는 경우에도 대충대충이다. 말하고 쓰는 전문가인 기자들까지 그렇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목례와 함께 눈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공식석상에서의 인사를 대신하는 모습이 포착됐다.”(ㅎ일보 2020년 2월 4일자), “현충탑 앞 국기를 향해 경례를 할 때…. 황 대표가 손을 내리고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것이다. 황 대표는 자신의 왼편에서 참배를 진행하던 양섭 국립서울현충원장이 묵념하듯 목례를 하는 것을 보고 자세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ㅇ뉴스 2020년 4월 1일자),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가 1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현충탑으로 향하던 중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올렸다 목례로 바꾸어 국기에 대한 경례하고 있다.”(ㅇ뉴스 2020년 4월 1일자 사진 설명)

‘목례’(目禮)와 ‘목인사’는 다르다. 목례는 눈으로 하는 인사이고 목인사는 고개를 숙여 가볍게 하는 인사이다. 물론 고개를 숙이고 인사한 후 상대방의 눈을 보며 다시 시선을 교환하는 눈인사를 할 수도 있지만, 목례가 고개를 숙이는 인사는 아니다. 위의 기사에서 ‘목례와 함께 눈인사를 나누는’, ‘묵념하듯 목례를’, ‘목례로 바꾸어 국기에 대한 경례’라고 쓴 것을 볼 때 목례를 목인사로 혼동한 것이 분명하다. 대충 아는 대로 대충 인식하고 기사를 쓰다 보니 이렇게 될 수밖에. 목례와 목인사를 혼동하고 쓴 글들은 널려 있다. ‘뇌졸증, 산수갑산, 아둥바둥, 양수겹장, 풍지박살’ 등 잘못 쓰고 있는 말들은 우리 주위에 또 얼마나 많은지.

대충 알고 대충 말하고 대충 기사 쓰지 말고, 바로 알고 바로 말하고 바로 쓰며 살자. ‘대충언론인’과 ‘대충선생님’이 ‘대충국민’을 만든다. ‘대충국민’이 대충 물건을 만들고 대충 건물을 지으니, 사고는 필연적이다.

사전 좀 보며 살자. 몇 초만 시간 내면 ‘대충’이 ‘정확’으로 바뀔 수 있는 세상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