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희<br>인문글쓰기 강사·작가<br>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정말 화사한 5월이다. 그러나 이런 계절에도 여지없이 죽음은 찾아온다. 떠나는 분들, 남은 가족들 모두 이별의 슬픔과 아쉬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결혼식, 돌잔치, 환갑잔치가 지나고 나면 장례식이라는 인생의 통과의례를 거친다. 이제 나도 부모님들의 부고를 받는 나이가 되었다. 어떻게 하면 잘 이별할 수 있을까?

삶과 이별하는 책 중에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1998년 번역된 후 2017년 출간 20주년 기념판이 나올 정도로 오랫동안 많은 독자들에게 큰 감명을 주고 있다.

스포츠 기자였던 미치 앨봄은 우연히 대학 시절 은사였던 모리 교수를 티비에서 보게 된다. 모리 교수는 루 게릭병에 걸려 남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미치와 모리 교수는 다시 만나 매주 화요일 인생의 여러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미치는 삶에 대한 통찰이 담긴 노교수의 마지막 강의를 녹음했다. 미치는 이것을 계기로 성공을 향해 달리던 자신의 삶에 큰 변화를 갖게 된다.

20여 년 전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여러 대목이 인상적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신선하게 다가왔던 부분은 모리 교수가 스스로 자신의 장례식을 주도한 대목이다. 모리 교수는 죽은 후에 문상 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 가족들을 불러서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살아있는 장례식’이라고 이름 붙인다.

이 책을 읽은 지 15년이 지난 5년 전, 아버지의 살아있는 장례식을 하게 되었다. 그때 13년간 투병하시다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는 93세 고령으로 오랜 간병에 지치기도 했고 무엇보다 상실감에 매일 힘들어하셨다. 그래도 때마침 자치구에서 자서전 쓰기 지원 사업이 있어 자서전 쓰기를 권유했다. 처음에는 부끄럽기만 한 삶을 어떻게 기록하느냐고 망설였지만 무엇보다 그 많은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집필을 결정하셨다. 실제로 정기적으로 방문해주는 담당자와 지난날을 회고하는 시간 자체가 무척이나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탈고하시고 나자 삶의 무의미감이 밀려오셨는지 더 쇠약해지셔서 병원에 입원하셨다. 삶과의 이별을 준비하시는 것이 역력했다. 위태로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돌아가신 후 아무리 좋은 말로 애도한들 고인에게는 들리지 않는다는 모리 교수의 말이 생각났다.

오랜 칩거 생활로 못 만났던 분들을 모실 핑계로 출판기념회를 열어 점심을 대접했다. 오신 분들도 정말 반가워하시고 아버지도 어찌나 기뻐하셨는지. 93세 고령에 거동도 불편하셔서 오랫동안 만나는 사람이 제한되어 있었으니 그냥 돌아가셨다면 그 한이 얼마나 많으셨을까? 아버지는 출판기념회 후 바로 돌아가셨다. 이렇게 출판기념회는 ‘살아있는 장례식’이 된 셈이다.

우리의 보통 정서로는 장례식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름을 붙이든 ‘살아있는 이별’을 준비해보는 것은 어떨까? 부모님이 어렵다면, 언젠가 죽음이 다가올 때 나 자신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