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지장사 용호문과 종무소가 있는 요사채. 북지장사는 대구시 동구 도장길 243에 위치해 있다.
북지장사 용호문과 종무소가 있는 요사채. 북지장사는 대구시 동구 도장길 243에 위치해 있다.

그는 백중날 태어난 크리스천이다. 산사기행을 떠나는 나에게 자기 몫의 기도를 부탁한다며 입버릇처럼 말할 때마다 나는 흘려들었다. 서둘러 떠날 걸 예감조차 못했을 그가 부처님 앞에서 무슨 기도를 하고 싶었을까.

농담처럼 주고받던 말들이 가끔은 하나의 의미가 되어 우리를 아프게 할 때가 있다. 북지장사 가는 소나무숲길에 들어서며 그가 무심코 흘린 말들을 나는 또 낚고 있다. 훌훌 털고 일어나지 못했던 그는 가끔씩 휘파람새가 되어 나타나거나 꿈결에 스쳐가듯 다녀가는 게 전부였지만, 그럴 때마다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레테의 강을 건너는 자는 모든 것을 망각할 텐데, 그와 관련된 것들은 오로지 살아 있는 자의 몫으로 남는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까지도. 떠난 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바람결에 떠도는 독백 같은 언어가 되어 주변을 배회하는 것이다. 북지장사 오르는 소나무숲은 변함없이 평화로운데 나는 생각이 많아진다.

북지장사는 동화사보다 8년 먼저인 신라 소지왕 7년(485년) 극달화상이 창건했다. 한 때는 절의 밭이 200결이나 되었으며 동화사를 말사로 거느렸을 정도로 매우 큰 절이었다. 19세기 초 동화사의 부속암자로 편입될 만큼 사세가 기울기도 했지만 끊임없는 중창불사와 함께 삼국유사에 기록됐던 ‘공산 지장사’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태 전, 그가 희망의 끈을 놓고 이별의 강가에 바투 앉아 있을 때 나는 이곳을 찾아왔다. 나의 작은 기도가 새롭고 청정한 생명의 다리가 되어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소나무 숲길을 걸어 대웅전에서 백팔 배를 하고 다시 소나무 숲길을 걸어서 내려오던 그날, 나는 텃밭에서 키운 채소 파는 할머니와 잡담을 나누며 웃다가 내려왔다. 삶은 공허하고 부조리한 것이다.

계단 위 낡고 소박한 용호문이 흙벽을 지탱하며 서 있다. 변함이 없다. 오래된 시골집 대문간처럼 보이지만 세속을 벗어나 진리의 세계로 첫발을 대딛는 천왕문 겸 불이문인 셈이다. 그 너머로 보이는 보물 제 805호 지장전은 별천지처럼 찬란하다. 꽃잔디가 숨넘어갈 듯 절정을 토해내고 천수경에 나오는 신묘장구대다라니가 불자들을 맞는다.

관세음보살과 삼보에 귀의하고, 악업을 금하며 탐, 진, 치 삼독을 멸하고 깨달음에 이르도록 기원한다는 주문이 오늘도 그날처럼 가슴을 헤젓는다. 익숙하다는 건 길들여진다는 것을 뜻한다. 오래 알아온 사이일수록 자연스레 서로에게 길들여지기 마련이다. 불과 몇 년 만에 대웅전에 이어 또 다른 당우가 새롭게 완공되어 규모가 커져 있지만 북지장사는 여전히 편안하다.

가까이 있는 지장전보다 대웅전 앞 배롱나무가 나목인 채로 붉은 연등을 달고 먼저 달려 나와 반긴다. 갑자기 내 안에 연등 하나 켜진다. 석가모니부처님이 아니라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이 봉안되어 있는 대웅전에서 삼배의 예를 갖춘다. 백팔 배로 친구의 완쾌를 빌었던 그 작은 법당에는 오월이 길을 잃지도 않고 찾아와 침묵을 다스리고 있다.

눈부시도록 화사한 이 봄날, 무언가 허전하다. 두 개의 대웅전 현판을 향한 석탑의 눈빛이 아련하게 흔들린다. 한 때의 영화를 떠올리며 감자꽃 같은 눈물을 그렁거리는 석탑 위에는 송홧가루만 날린다. 올해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석가탄신일 행사조차 윤사월로 미뤄진 탓일까. 술렁거릴 거라 여겼던 절간의 풍경은 뜻밖에 차분하다.

근처에서 환담을 나누던 젊은 스님이 방으로 들어가신다. 편리함과 바꾼 스님의 정신세계만큼이나 오래된 요사채가 눈길을 끈다. 물결치듯 기울어진 지붕, 마루도 없는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여진 철 지난 털신 한 켤레에 마음이 젖는다. 남루해 보일만큼 낡은 건물은 너와집을 연상시킨다. 운치 있게 기왓장을 올려놓은 키 낮은 지붕 아래 작은 종무소도 있다.

아직은 우리에게 무엇이 더 소중한지를 일깨워주는 따스한 풍경들, 머리가 천장에 닿을 듯한 처마 낮은 집, 저 문턱을 나서면서부터 우리는 탐욕에 길들여졌는지 모른다. 허기지듯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느라 늘 지쳐 있었다. 오래된 것들이 기도가 되어 발길을 붙드는 곳, 그것이 북지장사가 지닌 매력이다.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한 차례 마음을 정화시키고 지장전으로 들어선다. 정면 한 칸, 측면 두 칸의 다포식 팔작지붕을 한 지장전의 출입문은 특이하게도 측면의 뒤쪽 편에 붙어 있다. 텅 빈 법당을 석조지장보살좌상이 홀로 지키고 있다. 민머리에 늘어진 두 귀, 왼손에 보주(寶珠)를 들고 계신 부처님은 지장전 뒤뜰 땅 속에 묻혔다가 발견된 통일신라 후기의 불상이다.

죽은 뒤의 육도윤회나 지옥에 떨어지는 고통을 구제해 준다는 지장보살을 향하여 백팔 배를 시작한다. 그리움만 남기고 서둘러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할 것들, 몇 번의 봄을 보내고 나면 내 늑골에 살점처럼 돋아날, 애잔한 것들이 있어 우리는 겸허함 속에서 행복을 찾는다.

마음이 가볍다. 지장전을 나오는데 새 한 마리 지붕에 앉았다 날아간다. 잠시 천수경이 출렁, 다시 송홧가루 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