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희 작가의 35년된 남편의 유리컵과 56년 간직한 아버님 첫 직장에서 가을소풍기념으로 받은 찬합.
김순희 작가의 35년된 남편의 유리컵과 56년 간직한 아버님 첫 직장에서 가을소풍기념으로 받은 찬합.

이번 주부터 김순희 작가의 시간을 담은 에세이 ‘무엇을 간직한다는 것에 대하여’를 연재한다. 하루하루 쌓아 올린 시간의 추억을 기록하여 이야기로 들려줄 예정이다. 소소한 물건이 유품이 되고, 오래도록 한자리를 지킨 노포의 유래를 기록하고, 역사를 간직한 건축물을 찾아가는 작가의 발걸음이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기를 기대한다.

사람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여러 해가 지나도 아직 시댁에는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봄이면 만들어주신 콩잎무침 레시피와 낮은 음성으로 들려준 구성진 말들이 떠난 후에도 우리가족에게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박인환 시인의 시구절이 입에 맴돈다. 소중하지 않은 것인데 버리지 않고 보관하는 일이 쉽지 않다. 무엇이든 정리란 개념자체가 부족한 나는 그냥 쌓아두기만 할뿐이다.

그래서 같은 물건을 또 살 때도 있고 뒤적거리다 장 구석에서 보물을 발견하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어머니는 품에 들어온 것은 내다 버리는 게 없었다. 그래서 시댁에 가면 늘 보물을 발견하는 기분이다. 내 나이보다 늙은 물건들이 여기저기 눈에 뜨여 들춰보는 즐거움을 준다. 발견할 때마다 그 물건의 사연을 어머님이나 남편에게 꼬치꼬치 물었다. 늘 보던 것인 데 자꾸 묻는 내가 더 신기하다고 하면서도 어머님은 끝까지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어느 해, 모내기 새참으로 가자미회와 맥주를 내갔다. 잔을 찾다가 86년생 유리컵을 발견했다. 동국대 마크를 달고 있는 저 녀석은 남편의 물건이었다. 4학년 졸업반 체육대회 기념품인 듯하다. 우유회사나 소주 회사에서도 광고용으로 많이 나눠주는 게 컵이라 대충 사용하다 버리기 쉬운 것이 유리컵이다. 그런데도 저 유리컵은 용케 몇 십 년을 살아남았다니 대견스러웠다. 서울에서 자취생활을 끝내고 기차역에서 화물로 짐을 부치고, 손에도 작은 짐을 들고 귀향 했을 것이다. 그 와중에 깨지지도 버려지지도 않고 투명하게 웃고 있는 유리컵에게 칭찬을 한껏 해주고 싶다.

무엇이든 소중히 하니 이젠 정말 소중한 물건이 되었다. 시댁에 다니러 가면 어머님은 낮에 준비해둔 거라며 유채나물, 시금치, 파, 머위 같은 다듬어진 채소 한 자루와 고추장아찌를 양념해서 주셨다. 그리고 어머님표 노란 콩잎 무침도 담아 주셨다.

무엇이든 손에 들어오면 버리시지 않고 오래 두고 되새김질 하시는 어머니. 테두리가 하얗게 벗겨졌지만 아직은 파란빛을 간직한 얌전한 찬합에 차곡차곡 많이도 담으셨다.

김순희수필가
김순희수필가

저 그릇은 얼마나 쓰셨나 가만히 살펴보니 ‘신탄진연초제조창’이라고 기념품을 만든 이가 명조체로 써 있고, 1965년 추계 위안회 기념으로 만들었다고 새겨놓았다. 아버님이 젊은 시절 근무한 곳에서 가을 소풍을 다녀온 모양이다. 글씨나 그려진 꽃무늬나 ‘나 오래 된 물건이요.’하고 말하는 듯하다. 저 도시락은 참 오래도록 어머니 손을 탔다. 어머니의 결혼 생활 대부분을 함께 했다. 그동안 아버님의 점심을 담고 회사로 출근을 하고, 어느 날에는 어머님과 건넌들 밭에도 따라갔을 것이다. 누런 호박전을 품고 기름 냄새를 풍기며 새참으로 가족들의 배를 든든하게 채우기도 했을 것이다.

오래 간직된 그래서 소중해진, 남편보다 한 살 어리고 시동생이 형님이라 부르는 도시락. 어머니가 떠나서 이젠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이 없는 데, 나보다 훨씬 오래 시댁살이 한 저 녀석에게서 오늘은 남편의 어린 시절 코딱지 파먹던 이야기 전해 들어야겠다.


안동에서 태어난 김순희 작가는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에 수필부문으로 당선해 등단했다. 수필집으로 ‘작가와 비작가’를 펴냈으며 포항수필사랑 회원이며, 스마트폰 사진전을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