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승자의 손에는 꿈이 가득하고, 패자의 주머니에는 욕심이 가득하다’는 말이 있다. ‘승자는 넘어지면 앞을 보고, 패자는 넘어지면 뒤를 본다’는 말도 있다. 지난 4·15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은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이고, 미래통합당은 당권 쟁취 가능성 저울질 속에 ‘김종인’ 추대냐 아니냐를 놓고 연신 파열음이다. 당분간 제1야당에서 무슨 희망의 싹수를 보기란 어렵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늘고 있다.

민주당에서 일어난 ‘개헌론’ 돌개바람은 결코 허투루 볼 일이 아니다. 송영길 의원을 필두로 일부 당선자들의 입을 통해서 우후죽순 터져 나온 개헌론은 ‘대통령 중임제’에서 ‘토지공개념’, ‘이익공유제’에 이르기까지 휘발성 높은 개헌 화두들을 담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마저도 “개헌은 앞으로 1년이 골든타임”이라며 부채질을 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열어 국민 100만 명 동의를 조건으로 하는 ‘국민발안 개헌안’ 처리를 모색 중이다.

청와대와 민주당 지도부가 일단 제동을 걸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의 정책 세미나에 참석한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개헌추진과 관련해 우리 당, 지도부 내에서 검토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 역시 “청와대와 정부는 전혀 개헌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집권당의 개헌론이 소멸했다고 볼 여지는 없다. 코로나19의 가공할 여파가 걱정인 판국에 개헌 논란 과열로 인한 민심이반을 우려한 작전상 후퇴로 읽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미래통합당의 어질더분한 안팎 사정이 조기에 정돈될 가망이 전혀 없는 판국이니,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생각일 것이다.

절체절명의 위기국면이 이어지고 있는 미래통합당은 아직 배가 부른 모습이다.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부터 의심스럽다. 총선참패의 충격을 획기적인 혁신의 전환점으로 승화시키기는커녕 여전히 구닥다리 권력 쟁패만 탐닉하는 양상이다. 김종인을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해 극적인 반전을 꾀하자는 측과 전당대회를 통해 자강(自强)의 길을 가야 한다는 측이 맞서 8일로 예정된 원내대표 선거의 정중동 패싸움에 함몰돼 있다.

나라도 그렇고 통합당도 그렇다. 바다 한가운데서 큰 폭풍우를 만난 선박 신세다. 그런데, 아수라장이 된 배 위에서 식식거리고 잠을 자거나 먹을 궁리에만 빠진 천하태평 돼지들이 너무 많다. 이문열의 소설 ‘필론의 돼지’(‘피론의 돼지’ 또는 ‘필론과 돼지’로 통용)는 무도한 각반(脚絆·폭력집단의 상징)들의 횡포를 방관하는 비겁한 군상들을 통해 사회의 모순을 꼬집는다. 하버드대 교수 야스차 뭉크(Yascha Mounk)는 자신의 저서 ‘위험한 민주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 수호자들이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상 포퓰리스트들과 싸워 이길 수 없다”고 단언한다. 미래통합당은 아직도 ‘수구꼴통’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낡은 보수’ 각반에 미련이 남아 있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