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흑백판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알록달록한 색상을 걷어내니 희극과 비극은 더 뚜렷하게 다가왔다.

지난달 29일 개봉한 ‘기생충’ 흑백판 이야기다. 고전과 클래식 영화를 동경해온 봉준호 감독이 홍경표 촬영감독과 함께 특별히 선보인 버전이다. 화려한 색과 소소한 디테일이 어둠에 묻힌 대신 인물 표정과 대사, 이야기가 오롯이 살아났다.

특히 배우들 눈빛에서 더 많은 감정과 사연이 읽혔다. 박사장네 2층 창문에서 정원 생일파티를 바라보던 기우의 표정은 무덤덤해 보이지만 동경과 부러움, 암울한 현실에 대한 야속함이 차례로 교차했다. 인디언 분장을 한 채 박사장과 신경전을 벌이는 기택의 눈빛에선 살기가, 기택에게서 나는 냄새를 못마땅해하는 박사장 표정에선 ‘선을 넘는 경멸’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흑백 명암은 가난과 부유함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거실 한 면을 메운 유리창으로 햇빛이 쏟아지는 박사장네와 어두컴컴한 기택네 반지하 방, 그리고 문광의 남편이 숨어사는 지하실의 명도는 확연하게 달랐다.

이야기와 대사, 표정에 집중하다 보니 희극 끝에 찾아온 비극은 더욱 처연하고 황망하게 다가온다. 한편으로는 현실의 생생함이 색과 함께 휘발되면서 한바탕 꿈을 꾼 듯한 기분도 들게도 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