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희 청송군수
윤경희 청송군수

청송군 보건의료원 응급실을 들어가려면 ‘잠시 멈춤’을 해야 한다. 방호복을 입은 의료원 직원들이 일일이 내방객의 체온을 체크하고 신원 확인과 해외방문 여부를 기록한 후 발열이 없을 경우에만 내방을 허가한다. 청송군 보건의료원은 엄격한 출입통제를 위해 응급실을 제외한 나머지 의료원 출입구는 모두 봉쇄했다. 코로나19에 대처하는 청송군의 치밀한 방역활동 모습이다.

지난 2월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청송군보건의료원의 물 샐 틈 없는 방역체제 구축으로 지역에서 추가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고, 확진자 1명도 완치, 퇴원했다. 또 청송군 확진자로 집계된 2명 중에 1명은 주소지만 청송인 대구의 대학생이고, 1명은 해외입국자여서 사실상 지역주민 감염은 없었던 셈이다.

‘코로나19 없는 청정 청송’이 된 것은 △민관 합동의 완벽한 방역체제 구축 △정부 대책보다 한발 앞선 방역당국의 선제 대응 △청송군의 전폭적인 지원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청송군보건의료원은 첫 확진자가 발생하자 의료원 및 군청 방역반, 관내 사회단체, 봉사단체 등 50명의 긴급방역대책반을 편성하고, 군청 축산부서 차량과 군부대 살수 차량 협조를 받아 진보면 일대에 대대적인 방역에 나섰다. 다중집합장소, 사회복지 및 요양시설, 공공기관을 우선 방역한다는 방침 아래 확진자 동선에 따른 상가, 식당에 대해서도 일제 방역에 나섰다. 주민들의 불안 해소를 위해 일반 아파트, 빌라 등 주거지역의 공동시설 및 복도까지 꼼꼼히 방역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8개 읍면의 재래시장, 버스터미널 등 군민이 모일만한 장소면 어김없이 방역에 치중했다.

특히 청송군은 지난 4월 10일 코로나19 검체 채취의 신속성과 안전성 향상을 위해 ‘워킹스루’ 검체 채취 방식을 도입했다. ‘워킹스루’ 방식은 공중전화와 비슷한 형태의 음압시설이 작동하는 부스를 이용한 검체 채취방식으로, 이번에 도입한 ‘워킹스루’ 부스는 기존의 방식에서 진일보한 양방향 워킹스루가 가능한 형태이다.

정부대책보다 한발 앞선 청송군의 선제 방역대응도 코로나19를 잡은 요인 중의 하나다. 청송군은 긴급방역에 따른 예산이 없자 여름철 방역비를 선집행해 방역활동에 나섰다. 정부는 다음날 일선 행정기관에 선집행을 지시했다. 또 서울 콜센터 집단확진이 터진 날 청송군은 정부 방침이 내려오기 전에 관내 다중집합장소인 노래방, pc방 등지에 대해 미리 일제방역을 실시하는 등 선제 대응했다. 또한 청송군은 정부 발표 이전에 이미 임신 공무원에 대해서는 재택근무를 지시하기도 했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지역 소상공인들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는 만큼 중앙정부와 경북도의 지원을 언제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소상공인들이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정부·도 지원과는 별도로 청송군 자체적으로 긴급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게 됐다.

소상공인 긴급생계비 지원, 청송사랑화폐 특별 할인, 지방세 감면, 농기계임대료 감면, 전통시장 점포사용료 2개월 면제, 소상공인 특례보증 등의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군민들의 위축된 소비 심리에 활기를 불어넣고, 침체 된 지역경제를 살리는 데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그리고 지난 3월 12일부터 근 한 달 동안 운영돼온 생활치료센터 ‘소노벨 청송’은 191명이 입소하여 지역 전파 없이 완치율 92%라는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다. 자칫 청정지역인 청송의 주민들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었을 법한데, 우리 군민은 대승적 차원에서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며 따뜻한 응원을 메시지를 보내며 힘을 보탰다.

특히 이번 사례는 코로나19라는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국가적 비상사태를 마주한 상황에서 지방의 지자체와 민간이 합심해 최상의 치료환경을 제공한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 덕분이었을까. 청송군은 ‘코로나19 청정지역’으로 다시 되돌아 왔다. ‘산소카페 청송군’이 2020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대상에서 도시브랜드 부문의 첫 대상이라는 선물과 함께. 더불어 사과브랜드 부분에서 ‘청송사과’는 8년 연속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까지 가져왔다. 이 기쁨을 소중한 우리 군민들과 환희 속에서 함께 누리고 싶지만 아직 깨알 같은 코로나19의 불씨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는 섣불리 축배를 들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