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70년대 결혼 풍속도에 자주 나오는 얘기다.

고시공부를 하는 남자 애인을 위해 공장에 다니는 여자 애인이 열심히 돈을 벌어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한다. 남자는 몇 번의 도전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고시에 합격한 남자 애인은 사법연수원에서 공부하는 동안 복부인의 꼬드김에 넘어가 변심한다. 그는 많은 희생을 한 여자 애인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부잣집 딸과 결혼한다. 뻔하디 뻔한 통속적인 스토리다. 이같은 출세지향적인 풍토가 만연해지자 이를 묘사한 말이 ‘사랑 따로, 결혼 따로’다.

미래통합당이 바로 그 짝이다.

대구·경북지역은 미래통합당의 본산이다. 지역구 25개 가운데 복당을 추진중인 대구 수성을 홍준표 당선자를 제외한 나머지 24개 지역구에서 모두 통합당 후보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통합당의 공천이 잘못됐다며 무소속으로 출마한 현역 의원들에게도 할 말이 많았겠지만 지역민들은 통합당 공천을 받은 후보들에게 지지를 보냈다. 여당에 맞서 싸울 야당이 힘이 부족해서 되겠느냐는 심산에서였으리라. 문제는 지역민들이 그렇게 사랑하고, 열심히 뒷바라지를 한 통합당이 정작 자신의 운명을 정하는 비대위나 당 지도부를 구성하는 데는 대구·경북지역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랑 따로, 결혼 따로’다. 결혼적령기의 젊은이들에게 나이 든 어르신들이 설득조로 내놓는 이 얘기에는 ‘사랑은 감성, 결혼은 이성(현실)’이라는 논리가 깔려있다. 그런데 과연 이 논리가 합당한가.

통합당은 여당이 180석을 얻는 동안 개헌저지선인 100석을 간신히 넘긴 103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어떻게든 지지세를 넓혀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구·경북에서 승리했지만 수도권에서 참패한 통합당이 외연을 넓히려면 누가 당의 중심이 돼야 할까. 통합당 중진들은 대구·경북은 중심에서 빠지고, 수도권의 민심을 끌어올 만한 세력이 앞장서서 개혁을 주도해야 한다고 한다. 당의 가장 핵심적인 지지기반은 대구·경북지역인 데, 대구·경북지역 국회의원들은 뒤로 빠져 있으란 얘기다. 수도권의 민심을 끌어오기 위해 핵심 지지기반인 대구·경북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을 배제한 채 당권과 대권다툼에 혈안이 된 몇몇 이들에게 당의 운명을 맡기려 하는 것은 잘못이다.

통합당은 건전한 비판세력으로서 대안을 갖춘 야당, 중도적 보수를 포용하는 폭넓은 보수가치의 채택 등 개혁과 쇄신이 절실하다. 그러려면 통합당은 오히려 자신들을 뜨겁게 지지하는 TK지역의 민심을 등에 업고, 수도권 민심을 얻기 위한 정책개발과 보수가치의 확장에 힘쓰는 게 옳다. 그런 연후 수도권 민심을 공략할 수 있는, 젊고 참신한 대권 후보를 내세워 건곤일척의 승부를 겨뤄야 한다. 무엇보다 통합당이 바로 서려면, 우선 총선 직후부터 언론에 떠도는 ‘대구·경북지역 패싱론’이 현실화되는 걸 막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산토끼보다 집토끼가 우선이다. 그리고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게 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