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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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의 추억들이 삭막해져 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학창시절의 추억들은 졸업앨범에 새겨져 있다. 사진이 귀하던 시절 졸업앨범이 유일한 추억이었고 앨범을 뒤져가면서 친구들 얼굴, 선생님들 얼굴을 떠올리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교사 10명 가운데 7명이 학생 졸업앨범에 자신의 사진이 실리는데 불안감을 느낀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교사들은 졸업앨범에 들어간 사진이 범죄나 학부모들의 평가에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졸업앨범에 교사 사진이 들어가는 것에 부정적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졸업앨범 사진 탓에 피해를 본 경우를 접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40% 가량이 “직접 피해를 경험했거나 다른 교사가 피해를 본 사례를 들었다”고 답했다고 한다.

졸업앨범을 안 만드는 학교도 늘어가고 앨범을 사지 않는 학생은 과반이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물론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기가 너무 쉬워 학창시절 사진이 차고 넘치니까 앨범에 대한 필요성이 떨어지는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삭막해지는 학창시절의 추억의 일환이라고 생각이 들어가고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풍속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졸업식 전에 하는 사은회도 없어지고 있다. 40여 년 전 필자가 대학 다니던 시절 사은회는 제자와 은사 간의 큰 잔치와 같은 것이었다. 여학생들은 한복을 입고, 남학생들도 양복으로 정장을 하고, 교수님들에게 큰절을 하는 행사였다. 졸업생들도 교정을 떠나는 아쉬움과 스승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고 떠나는 제자를 축하하고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그런 자리였다.

스승과 제자 사이가 예전만 하지 못하고 또 사은회의 참석률이 떨어지면서 지금은 사은회가 없어진 대학도 꽤 있다고 들었다. 졸업식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국내의 대학 졸업식에는 대학원생만 자리에 앉고 학부 학생은 식장에 들어가지 않고 사진만 찍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졸업식에 와서 사진만 찍는다면 졸업에 대한 감회와 기억이 남아있을까. 서구의 대학에서 졸업식은 엄숙하면서도 온 가족이 참석해 화기애애하게 치러진다. 모든 졸업생을 단상으로 불러 학위를 수여하고, 식이 길어져도 자리를 이탈하는 졸업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몇 년 전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이 시작했던 졸업식 길거리 퍼레이드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졸업식에 모두 참가하여 그 타운의 가족들과 함께하는 모습이 정말 멋있고 정겨웠다. 그러나 그 행사도 코로나19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실시되지 않았다고 한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얼굴이 함께 나오는 앨범의 전통도 지켜지고 사은회의 아름다운 모습도 지켜지고, 졸업식도 좀 더 화기애애하면서도 모두 참가하는 그런 잔치로 치러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디지털 시대이지만 캠퍼스의 추억의 모습들이 잘 보존되었으면 한다.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관계가 아날로그 시대의 전통이 지켜지면서 삶의 큰 보람으로 함께 했으면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