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이재현
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18년 만에 이사를 했다. 대학 임용 후 한 방에서 지금껏 지내다가 같은 층의 북쪽방에서 남쪽방으로 향만 바꾼, 방 한 칸짜리 연구실 이사였다. 면적이 반 평 정도 줄어들어 어쩔 수 없이 짐을 줄여야 했다. 책과 서류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내놓았다. 한 권 한 권 떠들쳐보며 아쉬움이 남는다. 언젠가 볼 수도 있는데, 들인 책값이 얼마인데…. 그러나 이런 생각은 욕심에 불과했다. 18년 전 처음 연구실에 가져 오고 한 번도 안 본 책이 셀 수가 없을 정도다. 결국은 학회지 등 정기 간행물을 포함하여 버린 책들이 1천권이 넘었다. 책장도 4개나 버렸다. 어떤 물건이든 버리지 못하고 모아둔다는 저장강박증이 나에게도 있었나 보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고양시의 90세 독거노인 이야기가 방송이 된 적이 있다. 저장강박증을 앓고 있는 이 할머니를 여러 날 동안 설득한 끝에 2013년 10월에 열 평도 안 되는 집에서 100톤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 같은 물건들을 치울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3년도 지나지 않은 2016년 1월에 그 집에서 다시 치운 쓰레기가 5톤 트럭 4대 분량이었단다.

넷플릭스에서 ‘곤도 마리에: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면서 정리의 여왕이라 불리는 일본인 곤도 마리에의 집정리 노하우가 전 세계에 정리 열풍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 바로 1년여 전인 2019년 1월이었다. 그러나 이 열풍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사람들은 모으고 채우고 쌓기를 거듭하다가 코로나를 만났다.

코로나19로 인류는 세 달여 기간 동안 의도치 않게 멈추고 비우는 일을 지속하고 있다. 각국 정부의 국민 격리 조치로 자동차의 운행은 줄어들었고 소비의 급감으로 곳곳에서 공장의 가동은 멈췄다. 그러자 지구별에 뜻하지 않는 변화가 일어났다. 오염원의 배출이 급격히 줄어들자 이 짧은 기간에 대기질이 확연히 좋아졌다. 인간의 발길이 멈춘 곳에 원래 살던 동물이 돌아왔다. 인도의 루시쿨야라는 해변에는 관광객과 그들이 버린 쓰레기 대신 거북이 80만 마리가 돌아왔고, 영국 북웨일즈의 휴양지 란두드노에서는 야생 염소떼가 사람으로 번잡하던 거리에 나타났다고 한다.

지구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어 욕망을 채우면서 지금까지 거침없이 달려왔던 사람들은 코로나19로 그 욕망의 질주를 강제로 멈추게 됐고, 어쩔 수 없이 욕심을 비워야만 했다. 그러나 이 비움의 작업이 얼마나 오래 갈까. 고양시의 저장강박증 할머니 경우처럼 코로나가 잦아들면 또다시 질주를 시작하고 비웠던 욕망의 집 욕심의 방을 이전보다 더 꽉꽉 채우려는 보상심리가 작동할지 모르겠다.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면 비움은 다시 채움으로 환원된다.

성경 마태복음에도 더러운 귀신이 사람의 몸에서 나갔다가 그 살던 집(몸)이 비고 청소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살게 됐다는 말씀이 나온다. 비우면 채우고 싶어진다. 비우는 일은 그만큼 어렵다. 그래서인가, 코로나는 인간이 스스로 비우지 못한 욕망을 강제로 비우게 만들고 있다.

어떻게든 비우며 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