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 호 택
(….)
내가 마음의 스승을 찾아간 날은
어느 숨막히는 가을날
말없이 뜰을 거닐던 그는
손을 들어 먼 산줄기를 가리켰다
보세요, 저기 차령산맥을…
저와 같이 내달려 마침내 고군산으로 빠지지요
거기 몇 개의 섬을 이루지요
이십세기 수백 수천의 시인 가운데
발레리를 비롯한 몇 사람이나 살아남겠으며
그러니 어찌 무서운 일이 아니겠는가
나이 육십에 나는 문학을 새로 시작하지요
잠자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
운무에 싸인 푸른 능선들이 남으로 가고
부끄러움에 눈을 떨구니
벚나무 잎새가 발등에 와서 닿았다
시인이 말하는 최대의 풍경은 무엇일까. 꼭히 시인이 말하는 문학뿐만 아니라 우리가 꿈꾸며 그 꿈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며 한 생을 거는 것은 재화와 함께 얻어지는 불후의 명성 때문일까. 시인은 부질없는 욕망과 그 욕망이 삶의 방향성과 진실성을 왜곡할지 모른다는 것을 경계하고 있음을 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