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를 감염병 공포에 몰아넣은 코로나19가 인간에게 재앙으로 다가오지만 인간에게 피폐해진 지구에겐 코로나가 백신이 되고 있다. 이를 ‘코로나의 역설’이라 부른다. 코로나19라는 치명적인 감염병이 인간문명앞에 가려져 있던 자연의 본래모습을 되찾아주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두드러진 건 깨끗해진 공기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본격적인 측정에 나선 이래로 지난달 미 북동부 지역의 이산화질소 농도는 가장 낮았다. 중국의 대기중 이산화질소 농도 역시 2월에 30% 감소했다. 베이징하늘은 ‘베이징 블루’를 되찾았다. 이산화질소는 공장이나 자동차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이다.3월이탈리아에선 40~50% 하락했다. 한국에서도 재택근무, 개학연기 등 사회적 거리두기가 본격화한 3월 초미세먼지 농도가 지난해보다 46% 줄었다.

세계 최악의 미세먼지로 뿌연 대기에 휩싸였던 인도에서 맨눈으로 히말라야를 볼 수 있게 됐다.

공기만 맑아진 게 아니다. 세계적 관광지인 이탈리아 베네치아 운하가 맑아졌다. 강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녹색에 가까웠던 강물이 투명해져 작은 물고기떼까지 볼 수 있게 됐다. 베네치아 운하는 연간 2천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곳인 데, 지난 달 17일 이탈리아 전 지역 봉쇄령이 내려진 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호주 애들레이드에선 캥거루가 길거리를 뛰어다니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선 코요태가 금문교 인근을 거니는 장면이 목격됐다. 칠레 산티아고에서는 퓨마가 도심을 활보하고, 웨일스의 휴양도시 란디드노에서는 난데없이 산양무리가 나타나 도로를 가로지른다.

코로나19는 어쩌면 지구가 잠시 쉬자며 지르는 비명일 수 있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