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지난 4·15 선거일 하루 전 대구 수성구 신매광장 유세장, 4선의 김부겸 후보가 ‘새도 양 날개가 있어야 날 수 있습니다, 대구를 경쟁하는 도시로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절규했다. 북구 아울렛 광장 네거리에서는 2선의 홍의락 후보가 마지막 지지를 호소하고 있었다. ‘모레 아침 언론에 대구의 선거가 온통 핑크 색으로 표시되면 좋겠습니까.’ 국회 예결의원인 자신을 국회로 보내줘야 대구를 살릴 수 있다고 절절히 호소했다. 16일 총선 지도 TK 25석 선거구는 온통 핑크색으로 채색되었다. TK는 다시 보수 일당 독점구도로 회귀하였다.

이번 총선의 TK 표심은 한 마디로 문재인 정권의‘비판’을 넘는 ‘분노’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곳의 표심이 이렇게 기운 심리적 기저는 어디에 있을까. 민주당의 180석이라는 압승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표심은 문재인 정권에 대한 응징으로 집약되었다. 대구경북 유권자들의 정서에는 TK 정권 기득권에 대한 박탈이 보수정당 지지로 표출되었다. 아직도 이곳 밑바닥 민심은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의 향수가 지하수처럼 흐르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자성론과 비판론도 있지만 이는 소수일 뿐이다. 이곳 보수 주류는 박근혜 탄핵을 용납지 못하고 태극기 집회를 지지하고 유승민 등 보수개혁파까지 배신자로 간주하고 있다.

이러한 심리적 기저가 이번 총선에서 문재인 ‘정권 심판론’을 적극 지지하였다. 전국적으로 거의 먹혀 들지 않는 문재인 정권 심판도 이곳에서는 설득력 있게 확산되었다. 오히려 수도권에서 외면당했던 ‘문재인 대통령 탄핵’이나 ‘좌파 독재 종식’이라는 구호까지 이곳 보수층은 적극 지지하였다. 이곳에서는 야당의‘사회주의 개헌론’에 동조하면서 선거 직전 터진 야당의원들의 엄청난 막말도 선거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유시민의 ‘180석 발언’은 TK 주류에게 위기감을 불러와 보수층의 결집을 촉진하였다.

사실 대구 경북의 이러한 선거 표심은 곳곳에서 예감되었다. 이곳 장년층의 친목 모임에는 의례히 문재인 정권의 응징이라는 화두부터 등장하였다. TK의 친목 모임에서는 이에 대한 반론과 비판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 문재인 정권의 옹호나 지지는 좌파 용공세력으로 매도되기도 하였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상황에서도 문재인 정권에 대한 비난이나 분노는 카톡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문재인 정권은 철늦은 ‘친북 좌익 정권’이라는 흑색선전이 확대 재생산되었다. 그것이 결국 통합당 공천은 무조건 당선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수 있었다. 이러한 TK의 분노한 표심은 4선의 김부겸마저 추락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제갈량이 와도 이곳에서 민주당 간판으로는 패할 수밖에 없다. 역으로 이곳에서는 통합당 공천만 받으면 누구라도 당선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선거 결과에 TK의 보수 주류는 자존심을 살렸다고 위로할지도 모른다. 결국 이번 총선 결과는 정치의 지역주의 회귀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또한 이곳의 보수 독점 일당 정당구도는 이 지역 발전을 기약할 수도 없다. 중앙 정치와 연결되는 작은 숨구멍마저 막아 버리고 자폐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