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래<br /><br />시조시인<br /><br />
김병래
시조시인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세계 167개국의 민주주의 상태를 조사한 결과 2018년 현재 75개국이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고, 53개국은 권위주의를, 39개국은 혼합된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노르웨이가 10점 만점에 9.87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고, 대한민국은 8.00점으로 21위, 북한은 1.08점으로 꼴찌를 했다. 20세기 말 소련을 위시한 공산주의 국가들이 몰락하면서 세계 각국의 정치체제는 민주주의가 대세이지만 아직도 많은 나라들이 독재나 권위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주의란 한 마디로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이념과 체제’를 말하는 것으로,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말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나라의 규모가 커져서 모든 사안에 대해 모든 국민의 의사를 직접 물을 수는 없는 형편이라 각 지역의 대표를 뽑아서 민의를 대신하도록 하는 것이 대의민주제이다. 지역의 대표 말고도 직능별 전문인을 확보하고 사표를 방지하려는 취지로 비례대표제를 겸하는 나라가 많다. 후보자 개인의 능력이나 인품보다는 소속 정당에 대한 선호도가 당락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얼마 전에 치러진 총선에서는 정책이나 비전은 실종되고 ‘정치공학’만 난무했다는 느낌이 짙다. 정치공학(政治工學)이란 학문적 뉘앙스와는 달리 권력을 유지하고 국민을 통치하기 위한 방법론을 말하는 것으로 구소련에서 쓰던 말이다. 대한민국에서는 2012년 대선을 전후하여 정치권에서 자주 쓰이기 시작했는데, 주로 ‘유권자들에겐 실질적인 이익이 되지 않는 형식적인 문제를 정치인들의 이익을 위해서 행하는 행위’라는 부정적인 의미의 말이다. 비례의석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한 선거법 개정과 그것에 대응한 자매정당 만들기 등이 바로 정치공학적 술수에 해당한다.

정치공학은 일단 백성을 우민(愚民)으로 보는 데서 나온 발상이다. 정책의 진정성이나 타당성과는 상관없이 조삼모사식 꼼수로 진상을 호도하고 위장하는 것으로 국민을 속일 수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현대의 선거전에서는 정치공학적 역량이 승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된 계기랄까, 몇 가지 그럴싸한 포장이 될 만한 것을 내세우고 거기다가 금품공세까지 더하면 대다수 국민들은 넘어가기 마련이라는 걸 실감하는 선거였다. 정부의 무능과 실책, 각종 범법의 피고인 신분인 자들의 후안무치와 적반하장도 정치공학적 포장과 포퓰리즘의 당의(糖衣)에 쉽사리 덮인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었다. 물론 상대방에는 온갖 악의적인 프레임을 씌우는 것도 정치공학의 주요 메뉴다.

아무튼 이제 완전히 좌파들의 세상이 되었다. 도처에 완장을 차고 죽창을 든 자들이 살기를 번뜩이며 설치고 있다. 자신들은 무슨 짓을 하든지 그것이 곧 법이고 정의라는 무소불위와 오만방자가 난무하는 세상이다. 제도권에 밥줄을 대고 있는 사람들은 행여 그 서슬에 베이지 않을까 전전긍긍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