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기자가 만난 경북 사람
앞으로도 ‘포항 사람’으로 살겠다는 허대만

포항이 젊은 세대가 미래를 설계하며 성장할 수 있는 도시가 되길 바란다는 허대만 씨.

과장과 미사여구를 사용하지 않는 담백한 사람. 이번 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포항남·울릉 지역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석패한 허대만(52) 씨에게서 받은 첫 느낌이다. 구구하게 패배를 변명하지 않고, 경쟁했던 당선자를 향해 “앞으로 의정활동을 잘 해서 표를 준 분들에게 보답하시라”는 덕담을 전하는 사람.
 

“변화를 향한 희망은 현재진행형 입니다”  
  고향서 선출직공무원 되고팠던 명문대생  
  시민운동가로, 시의원으로 지역 이끌어
  지역 정치구도 바꾸고픈 열망 이루려
  국회의원·지자체장 선거 7번 도전장
  거듭되는 낙선에도 지역 미래 포기 않아
“집권당과의 핫라인 사라진 대구·경북서
  국책사업 소외받지 않도록 역할 찾고파”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온 허대만 씨는 지금까지 포항에서 8번의 선거를 치렀다. 성적은 시의원 1승을 제외하면 7패. 그럼에도 절망하지 않고 총선과 지자체장 선거에 나섰다. 포기를 모르는 출마의 이유가 궁금했다.

미래가 기대되는 명문대 학생에서 시민운동가로,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에 노력한 시의원에서 국회의원과 지자체장 선거 출마자로 포항에서 살아온 30년 가까운 세월.

4·15 총선이 막을 내린 지난 토요일 오후. 조용해진 선거사무소에서 허대만 씨를 만났다. 정치인으로서의 삶, 아버지와 남편으로서의 삶에 더해 그가 그리고 있는 포항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까지 들어볼 수 있었다. 아래 그날 오간 대화를 가감 없이 옮긴다.

-아쉬움이 있겠지만, 21대 총선 결과를 자평한다면.

△전국적으론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을 얻어 정권 후반기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게 돼 다행이라 본다. 하지만, 대구·경북의 경우엔 미래통합당이 거의 전 의석을 휩쓸었다. 선거 결과가 포항의 앞날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걱정된다. 기울어진 지역의 정치 지형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어 안타깝다.

-포항에서 시의원, 시장, 국회의원 선거에 8번 출마했다. 시의원 당선 한 번을 제외하고는 결과가 좋지 못했다. 그럼에도 출마를 지속했는데.

△2008년 국회의원 선거엔 대구·경북 27개 선거구 중 민주당 출마자가 6명밖에 없었다. 2010년 지자체장 선거에선 23개 시·군 중 민주당 후보자가 겨우 나 하나였다. 경북에도 민주당 지지자가 분명 있는데, 그들을 실망시킬 수 없었다. 당의 지역 책임자로서 ‘나라도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출마를 지속했다. 선거를 통해 지역의 정치 구도를 바꾸겠다는 오랜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다행히 갈수록 지지를 보내는 시민들이 많아지고 있어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다.

-서울대 정치학과에서 공부했다. 서울이 아닌 포항에서 정치를 하려는 이유는.

△포항은 내 고향이다. 대학 다닐 때부터 ‘고향에서 선출직 공직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고시를 통해 공무원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대학원 재학 중에 포항으로 내려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대 중반 시절이다. 어릴 땐 형편이 너무 어려웠는데 주변의 도움으로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내가 아홉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선친을 대신해 날 도와준 포항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과 부채의식이 있다. 앞으로도 포항 사람으로 살아갈 생각이다.

-이번 선거엔 출마하지 않으려했다고 들었다.

△21대 총선에선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좋은 후보를 찾고자 애썼고, 실제로 몇 분을 접촉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 난색을 표했다. 그들의 심정도 이해된다. 민주당 깃발로 포항에서 선거에 나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후보를 내지 않고 지역구를 비워둘 수는 없었다. 민주당 경북도당 위원장의 책무를 다른 이들에게 미룰 수도 없었다. 그런 이유로 출마를 결심했다.

-경쟁자였던 미래통합당 후보가 ‘포항은 썩은 땅’ 등의 막말로 설화(舌禍)를 겪었는데.

△SNS에 글을 쓰거나 발언 도중에 나온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선거기간 중엔 후보자의 뜻이 왜곡되거나 과장돼 비판받는 경우가 흔하다. 이미 선거는 끝났다. 앞으로 의정활동을 열심히 해 지역민의 신뢰를 얻었으면 좋겠다.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서 집권당과 대구·경북의 핫라인이 사라졌다고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지역 현안을 풀어가야 하는데 정부와의 협상 통로가 막혔다. 심각한 문제다. 그동안은 집권당이 취약한 지역을 배려해왔다. 김부겸, 홍의락, 김현권 의원 등이 지역 발전을 위해 노력했고, 대구·경북을 배려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분위기가 사라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향후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국책사업 등에서 우리 지역이 소외받거나, 사업 진행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이 없지 않다. 어렵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갈 것이다.

-포항에서 정치를 하며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문재인 정부 초기에 행정안전부장관 정책보좌관으로 일했다. 그때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주무 부처의 정책보좌관으로 있었기에 임대주택 보급, 이재민 지원, 수능 연기 등의 정책 수립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다. 장관에게 ‘일정 기간 포항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도 했다.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어려움을 직접 듣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도 나름의 역할을 하기 위해 고심했다. 포항시민들에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었다.

-지진 이후 포항은 지속적 경기 침체에 빠져있는데.

△포항시의 성장잠재력은 여전하다. 이젠 지곡단지를 중심으로 첨단산업을 키워야하지 않을까. 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초기 동력을 찾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시민들의 힘을 하나로 모을 필요가 있다.

-거듭 낙선의 고통을 준 포항시민들에게 서운하지 않나.

△누구를 원망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이번에는 이길 수 있겠구나’라는 상황에서 선거를 치러본 적이 거의 없다. 대부분 총대를 멘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매번 유권자 15% 이상의 지지는 받았다. 절망할 정도의 득표는 아니었다. 국회의원 선거에 처음 출마했을 때도 선거비용은 보전 받을 수 있었다. ‘언젠가는 포항시민들이 나를 선택해주시겠지’라는 마음이 훨씬 컸다. 물론 이번 선거는 사전 여론조사 결과 등이 나쁘지 않아 기대를 했는데, 다소 아쉽다.

-몇 해 전엔 건강에 문제가 있었다고 들었다.

△젊은 시절엔 건강을 과신했는데, 이른바 촛불정국 즈음에 위암 통보를 받았다. 수술과 항암 치료가 잘 돼 지금은 괜찮다. 아프고 나서도 선거를 두 번이나 치르지 않았나.(웃음) 현재는 6개월에 한 번 정기검진을 받고 있다.

-다둥이 아빠다. 집안에선 어떤 남편, 어떤 아버지인가.

△애들이 네 명이다. 나와 아내 모두 아이들을 좋아하고 가능한 많이 낳자는 것에 동의했다. 장남이 스물셋, 막내딸이 열두 살인데 자식들을 볼 때가 가장 즐겁고 행복하다. 이번 선거 유세 현장에 아이들 모두가 나왔다. 자기들끼리 아빠를 응원하자고 의논을 했던 것 같다. 기특하고 고마웠다. 바빠서 애들을 챙겨줄 시간이 많이 없지만, 언제나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한다. 아내에겐 가정적인 남편이 되고 싶다.

-앞으로도 포항에서 출마할 의향이 있는지.

△즉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선거 과정에선 어쩔 수 없이 주변에 너무 많은 폐를 끼치게 된다. 도와준 분들에게 느끼는 고마움은 평생 안고 가야할 것이지만…. 포항을 발전시켜 포항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능력 있는 사람을 찾고 싶다는 정도로 대답하면 되지 않을까?

-포항이 그려가야 할 청사진은.

△단순화된 산업구조의 혁신이 필요하다. 철을 생산하는 도시인데도 자전거 만드는 기업 하나 없다. 철만 만들 게 아니라 부가가치가 높은 관련 산업을 함께 키워가야 한다. 고용도 거기서 창출된다. 포항의 철강생태계를 미래형으로 바꾸는데 일조하고 싶다. 포스코와 포스텍이 있으니 인프라는 어느 지역보다 좋지 않은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력, 정책 실행 과정에서 민간의 협조를 이끌어낼 리더십을 가진 인물도 육성해야 할 것이다.

-포항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포항에 애정을 가진 젊은 정치인이 나타났을 때 꿈과 희망을 키워줄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 비단 정치 지망생만은 아니다. 청년이 떠나는 도시가 아닌, 어떤 분야에서건 청년이 미래를 설계하며 성장할 수 있는 도시가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부탁드린다.

포항은 단순화된 산업구조의 혁신이 필요하다. 철만 만들 게 아니라 부가가치가 높은 관련 산업을 함께 키워가야 한다. 고용도 거기서 창출된다.

포스코와 포스텍이 있으니 인프라는 어느 지역보다 좋지 않은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력, 정책 실행 과정에서 민간의 협조를 이끌어낼 리더십을 가진 인물도 육성해야 할 것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