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총선에서 모진 굴욕을 당한 미래통합당이 당의 진로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쪽으로 잡았다. 현역의원과 21대 총선 당선인 142명 중 140명을 상대로 전화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이같이 수렴했다. 총선 직후 조기 전당대회냐, 비대위 체제냐를 놓고 중구난방 논란을 벌여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는 맹비난을 들어왔던 통합당이 그나마 갈래를 잡은 것은 다행이다. 혁신의 앞길에 놓인 쩨쩨한 권력욕의 사심부터 걷어내야 한다.

미래통합당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다. 하나는 일부에서 나오고 있는 용렬한 ‘사전투표 조작설’을 정리하는 일이고, 다음은 당선자들의 근시안적 사욕을 제어하는 일이다. 보수성향 유튜브 채널에서 시작된 사전투표 조작설에는 미심쩍은 몇 가지 수치들은 있지만, 똑 부러지는 증거는 아직 없다. 전문가들 사이에는 전국적인 선거를 조작하는 일은 실제로 가능하지도 않고, 진보 유권자들이 사전선거에 더 많이 나왔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심각한 것은 총선에서 승리한 일부 중진들 사이에서 나오는 딴소리다. 최고위원 중 유일하게 살아남아 5선 고지를 밟은 조경태 의원은 6개월 이상 계속되는 비대위가 아니라 빨리 전당대회를 열어 신속히 새 지도부를 세우자는 주장을 폈다. 김태흠 의원도 “외부 인사에게 당을 맡긴다는 것은 당의 주체성이 없다는 것인데, 나약하고 정체성도 없는 정당을 국민이 신뢰할 수 있겠나”라는 원칙론을 동원해 조기 전당대회 목소리를 냈다.

일단 김종인 전 선대위원장은 단지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단기 비대위원장 역할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있다. 통합당을 뿌리째 바꾸기 위해서는 전권 위임이 필요하고, 최소한 다음 대통령 선거까지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조건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당은 이미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 병증이 진단된 중환자나 마찬가지다. 내부의 힘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외부에서 명의(名醫)를 초빙하기로 한 이상 환자는 말이 많아서는 안 된다. 염치가 있다면, 사사로운 권력욕으로 속 보이는 발언을 뻔뻔하게 쏟아내는 일은 삼가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