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명 시인
조현명 시인

코로나19가 지나가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두 가지 의미다. 먼저 아직 그 때로 돌아가긴 이르다는 경고, 또 하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내다보는 시각이다. 나는 아직도 전자에 무게를 두고 싶다. 정부는 고강도 거리두기에서 ‘고강도’라는 말을 빼면서도 매우 조심스럽게 거리두기를 실천하자고 당부하고 있다. 나는 기꺼이 동의한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이 ‘언제까지?’라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학기 중 홍수가 나서 혼란에 빠지는 상황이 여러 번 있었다. 그때마다 학생과 교사는 학교장의 결정에 기린목이 된다. 한명의 교사가 앞서서 학생들에게 “너희들 곧 집으로 갈 것이다.” 귀띔만 해도 술렁이며 난리가 난다. 학교장은 고민에 빠진다. 현재 상황이 학생들을 하교시켜야 할 정도인가? 고민이다. 하교를 늦추었다가 큰 화를 부른 적도 있다. 반대로 하교를 미리 단행했다가 학부모들의 항의에 곤혹을 치르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사립학교는 윗사람의 눈치까지 봐야하니 매우 결정이 어렵다.

매뉴얼이 잘 갖추어진 대한민국에서도 여기까지이다. 전염병의 방역에는 최대한 조심해야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이 현재 확진자를 줄이며 안심단계에 접어들게 했다. 그런데 당국은 생활방역으로의 전환 시기 결정을 ‘확진자 50인 이하, 감염원을 알 수 없는 확진자 5%이내’라는 당초의 원칙을 슬그머니 미루었다. 그것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된 후 확진자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책임질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다. 그 난세의 영웅은 평상시에는 지질하고 평범한 사람이다. 이 말은 시기에 따라 성공적인 대응의 마인드가 다르다는 이야기가 된다.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시기에는 ‘나는 이런 사태를 책임을 질 수 없다’는 마인드의 소심한 관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막을 내리는 시기에는 ‘내가 책임지겠다’는 용기 있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렘데시비르나 혈장치료제 혹은 그것보다 30배의 효과가 있다는 우리나라 제약 회사의 발표가 있기도 하다. 게다가 6시간 이내로 진단하는 진단키트를 가지고 있고 하루 900명이 넘는 확진자를 처리한 경험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당국은 아직 소심한 마인드를 보인다. ‘책임지지 않겠다’는 마인드가 지배하고 있다. 난세의 영웅들이다.

지금까지 잘 해온 것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로 돌아갈 수 없다’는 판단은 한참 후에나 가능하다. 이제 새로운 마인드로 접근해야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올해 안으로 개학을 못할 수도 있다’는 발언에서 과거 홍수가 났을 때 하교를 늦춘 교장이 보이는 것은 왜일까? 단계적으로 경제활동을 실시하는 유럽과 미국의 선택이 나중에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자. 치료약은 결국 사망자를 줄이고 집단면역을 만들어내는 효과로 건너가게 할 수도 있다. 우리의 대응이 항상 옳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이제 마인드를 바꿔야할 시기가 된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