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진<br>​​​​​​​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
박화진
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한국어가 어렵다고 한다.

물론 오랜 시간을 투자하고도 잘 늘지 않는 영어도 우리에겐 만만치 않은 언어다.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어의 어려움을 생각해본다.

‘배’라는 단어 하나만 보더라도 신체부위, 선박, 과일과 같은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를 외국인이 익히는 일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때’라는 단어도 같은 경우다.

한자로 시(時)라는 의미와 사람의 몸에 붙어 있는 찌꺼기라는 의미를 가진다.

한 때 소리는 같은데 의미가 다른 단어들이 썰렁한 아재개그 소재로 사용되기도 했다.

말(言)과 말(馬)이 말장난 개그의 일반적 소재가 된 것은 익히 아는 일이다.

한국인이라면 음의 고저장단이나 대화상황을 감안하여 비록 같은 음의 단어라 해도 그 의미에 혼란이 없을 것이다.

한국어를 익히는 외국인에게는 대략 난감이겠다.

그런데 전혀 다른 의미의 ‘때’라는 단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니 꽤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

바닷가 작은 포구에는 썰물 때 갯벌에 삐딱이 누워있는 고기잡이배가 있다. 밀물이 밀려와야 뜰 수 있다.

‘때(時)를 기다려라’는 말을 실감케 된다.

썰물인데 먼 바다로 나가려면 그 배를 갯벌위에서 밀고 나가야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고 꼭 나가야한다면 대단히 힘든 작업을 해야 한다.

공중목욕탕에서 목욕관리사에게 때를 밀 때 탕에서 몸을 불리는 절차가 있다.

급한 마음에 바로 때를 밀어달라고 하면 때가 잘 밀리지도 않아 두 사람 모두에게 힘든 작업이 된다.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목욕탕의 흐릿한 조명아래 잡티나 검버섯과 같은 것을 때인 줄 알고 밀다가 피부가 따가운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역시 때가 아닌 것에 대한 부작용으로 본다면 지나친 갖다붙이기일까? 때가 되지 않았는데 서둘러 어떤 일을 성취하려는 경우에 이런 저런 폐단이 생긴다.

직장에서 승진도 적당한 때에 해야 좋다고 한다.

성과와 능력에 과분하게 지나친 승진욕심으로 무리해서 때 아닌 승진을 하면 뒤탈에 시달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말 역시 때를 기다리는 삶의 지혜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선거가 끝났다. 승자도 있고 패자도 있는 게임이었다.

승자의 축배 소리가 귀에 거슬리는 소음으로 들리며 석패의 분루를 삼키는 후보자와 그들을 지지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게임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의 눈길과 남 탓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기도 할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이기에 있을 수 있는 감정표출이다.

하지만 한발치만 물러서서 생각하면 오늘의 패배가 결코 영원한 패배가 아니라는 자기위로가 가능하다.

아직 ‘때(時)가 아니다’, ‘때가 덜 불어서….’라는 말로 재기를 꿈꾸면 된다고 본다.

패인을 분석하고 보충하여 나를 위해 기다리는 때(時)를 만들면 될 것이다.

사회 초년병 시절, 승진시험에 물을 먹고 풀죽어 고개 떨군 채 복도를 걸어가는 나에게 ‘사람은 다 때가 있는 법’이라고 한 상사의 말이 다시 생각난다.

그리곤 잠시 뒤 “박 반장! 그런데 그거 누가 한 말인지 아는가? 목욕관리사 말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