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들이 한창인 벽송사 벽송선원 뒤안. 벽송사는 경남 함양군 마천면 광점길 27-177에 위치해 있다.

비가 그친 지리산은 봄이 한창이다. 저마다 다른 연둣빛 사이로 산벚꽃이 어울려 꽃길을 연다. 민족상잔의 비극이 서려 있는 골짜기에도 4월의 유순함이 피어나는데 벽송사 가는 길은 가파르기만 하다.

지리산 칠선계곡에 위치한 벽송사는 1520년(중종 15년) 벽송 지엄 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비롯한 기라성 같은 정통 조사들이 수행 교화하여 조선 선불교 최고의 종가를 이룬 유서 깊은 사찰이다. 하지만 일제의 조선불교 말살정책으로 사세가 기울기 시작하여 6·25때는 빨치산 토벌을 위해 방화된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곳은 판소리 여섯 마당 중 ‘변강쇠가’의 배경이기도 하다. 변강쇠가 나무는 하지 않고 장승을 뽑아 땔감으로 쓰자, 장승 우두머리가 통문을 돌려 팔도의 장승을 불러 모아 변강쇠를 혼내준다는 이야기이다. 부당한 대접과 억압을 받는 민중을 장승에 비유하고 변강쇠를 기층 질서로 풍자한 민중문학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벽송사에도 밤나무로 만든 한 쌍의 목장승이 보호각 안에 서 있다. 왼쪽 여장승은 잡귀 출입을 통제하는 금호장군(禁護將軍)으로 산불에 윗부분이 타서 파손이 심하다. 오른쪽 남장승은 불법을 지키는 호법대신(護法大神)으로 짱구모양의 민머리에 돌출된 큰 눈과 주먹코, 합죽한 입, 무성한 수염으로 표정이 풍부하면서도 익살스럽다.

변강쇠와 옹녀의 외설적인 이야기를 떠올리면 장승과 벽송사의 만남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하지만 질박한 조각수법이 돋보이는 한 쌍의 목장승이 사천왕이나 인왕의 역할을 대신했다는 걸 알면 궁금증이 풀린다. 불교와 민속신앙의 자연스런 융합인 셈이다.

세 단으로 조성된 벽송사의 첫 느낌은 여느 사찰과 다르다. 절의 중심에는 주법당이 아니라 벽송선원이 자리하여 맑고 고요한 기운을 뿜어낸다. 선불교의 종가다운 배치가 참으로 인상적이다. 내로라하는 대사들을 배출한 사찰치고는 소박하다. 흐트러짐 없는 선원의 이미지가 제대로 살아있어 발걸음은 저절로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간월루와 선원 사이로 고독한 눈물처럼 서 있는 홍도화가 방문객을 응시한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낮은 탄성이 터지고 말았다. 저 대책 없는 붉음 앞에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한옥을 배경으로 홍도화는 너무나 고혹적이다. 화려하면서도 절제미가 돋보이는, 이토록 이지적인 붉음을 본 적이 있는가.

선원을 돌아서 가는 발길이 까닭 없이 바쁘다. 유일하게 단청옷을 입은 원통전과 산신각은 겸허히 뒤로 물러나 있다. 안정감 있는 배치에 감탄하면서도 내 눈은 온통 선원 뒤뜰의 봄꽃에 팔려 있다. 붉게 하혈을 시작하는 동백과 청승스러울 만큼 창백한 돌배나무꽃, 우아함을 갖춘 키 큰 자목련까지, 홍도화와 어울려 만다라가 따로 없다. 모처럼 내린 봄비에도 벽송사 풍경들은 지나치게 차분하다.

젖은 봄꽃들의 자태에서 숭고함이 듣는다. 벽송사는 이름난 선원답게 뒤안의 분위기까지 완벽하다. 비가 온 뒤의 4월, 함양에서 오도재를 넘고 추성마을을 지나면서 쏟아냈던 감탄들과는 또 다르다. 아찔한 계절, 중심을 향해 살아가는 벽송사 풍경에 취해 나는 한참을 뒤뜰에서 서성이고, 곧게 뻗은 도인송은 그런 나를 지긋이 내려다본다.

높은 축대 위에서 도인송을 향한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미인송의 구애도 눈물겹다. 높다란 지지대에 의지하면서도 아슬아슬 기울어진 채 살아가는 미인송의 한결같은 마음과 도인송의 곧은 정신이 살아 있는 죽비가 되어 준엄하게 꾸짖는다. 삶에는 수많은 유혹이 따른다. 나는 얼마만큼의 진중한 자세로 나다움을 지키려 노력해 왔는가.

돌계단을 오르자 보물 제 474호 삼층석탑이 홀로 너른 터를 지킨다.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초에 조성되었을 거라 보는 석탑은 미인송의 기울어진 목덜미를 외면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강인한 홀로는 언제나 눈길을 끄는 법이다. 석탑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옛날에는 분명 이곳에 금당이 있었으리라.

뒤늦게 원통전 법당 문고리를 잡는 손이 떨려온다. 작고 아늑한 법당, 백팔 배를 하는 몸이 신기할 만큼 가볍다. 기도는 단조롭고 엄숙하지만 잡념이라고는 일지 않는다. 그런 우리를 관세음보살부처님의 자비로운 눈길이 함께 한다. 문 밖에는 다시 봄비 오는 소리가 들린다. 원통전을 향해 오시는 부처님 발걸음 소리 같기도 하고, 떠나는 동백을 위한 아련한 연가 같기도 하다.

절을 하는 동안 법당문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만을 위한 작은 공간에는 오로지 감사와 행복이 물결친다. 봄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남편이 우산을 가지러 뛰어가고 홀로 원통전 뜨락을 서성인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처연히 비를 맞고 있다. 용기를 내어 돌계단을 내려선다. 허둥대거나 서두르고 싶지 않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인적 끊긴 벽송사는 봄비 맞으며 다시 참선에 들고, 간월루 뒤 요사채 뜰 위에는 비에 젖은 우산 하나가 물기를 머금은 채 절을 지킨다. 따뜻한 풍경이다. 벽송사를 향해 두 손 모으는 순간 고단했던 나의 하루는 감사함으로 충만해진다. 깊어 가는 4월, 봄비는 하염없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