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솔길을 걸으며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남자가 있습니다. 숲 속 향긋한 바람이 귀를 스칩니다. 그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여 봅니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그렇군요. 이 남자는 시를 읊조리며 걷는 중입니다.

“저는 마음이 산란할 때면 숲길을 찾습니다. 그냥 걷는 게 아니라 시를 읊조리지요. 물론 외우고 있는 시입니다. 걷지만, 시를 외우는 동안 가슴엔 바람이 불고 시냇물이 졸졸 흐릅니다. 여름이면 더위를 사라지게 하고 겨울이면 시 한 편이 모닥불을 지펴주지요. 슬플 때는 한없는 위로가 시로부터 흘러나옵니다. 괴로운 날은 모든 근심을 사라지게 하고 낙원으로 저를 이끌어주는 천사랍니다.”

이 남자, 천 편의 시를 외우고 있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10시간쯤은 꼬박 새우며 시를 외우고 세상 희로애락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그의 곁에는 늘 1천명의 천사가 동행한다지요.

중학생 때 담임 선생님이 김소월의 ‘초혼’을 단숨에 외우는 모습을 목격하고 큰 울림을 느낍니다. 그렇게 멋질 수 없었지요. 고등학교 때 저수지 둑에서 빛나는 별을 보며 친구가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을 암송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를 들으며 사내의 가슴에도 하늘의 별이 콕콕 박히는 경험을 합니다. 신비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이 남자, 프랑스에서 산 적이 있습니다. 철학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지요. 프랑스에서는 초등학생 숙제에 시 한 편 암송하기가 있습니다. 프랑스 아이들은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모두 100편의 시를 외웁니다. 그는 이것이 프랑스의 문화적 힘이라는 것을 직감합니다.

자신에게 질문하지요. 나도 시를 외워 보면 어떨까?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편씩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외우면 잊어버리고 또 외워도 머리에서 감쪽같이 언어가 사라져버리지만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